고난 뒤에 오는 축복

[ 땅끝에서온편지 ] (4 ) 비자와 자녀문제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9월 10일(목) 15:07
   
▲ 선교사들에게는 비자와 자녀문제를 비롯해 많은 어려운 문제가 닥쳐오지만 하나님은 항상 더 큰 복으로 갚아주신다. 사진은 카자흐스탄인들의 예배 모습.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본연의 사역 외에 느끼는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는 '비자'와 '자녀 교육'이다. 거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이 두 가지 문제로 고민하고 마음 졸이며 심각하게 기도한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는 비자를 마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선 거주가 안정되어야 다른 일들을 추진할 수 있을 터인데 비자가 안정되지 못하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1991년 처음 소련으로 입국을 하였을 때는 나라들이 독립되기 전이라 러시아 비자 하나를 받으면 구소련 지역 어디든지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12월 15개의 나라들이 독립을 하면서 각 나라들은 개별적으로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었고 비자도 각 나라별로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의를 가지고 1년짜리 비자를 주기도 했지만 2~3년이 지난 후부터는 비자 발급으로 선교 활동을 서서히 죄기 시작하였다.
 
당시 비자를 받기 위하여 서류를 갖추는 데만 한 달이 걸릴 정도였다. 가슴 졸이며 한 달을 준비하여 오빌(비자관청)에 가져가면 비자 기한을 석 달을 주기도 하고 6개월을 주기도 하였다. 늘 불안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3년이 지났을 때 비자를 연장하러 오빌에 들어갔더니만 "당신은 3년이 지나 이제 비자를 줄 수 없으니 이 나라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급기야는 준비한 서류를 사무실 바닥에 팽개치는 것이었다. 흩어진 서류들을 다시 주섬주섬 주우며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하나님께 항의하는 기도를 하였다. 내가 언제 선교사 된다고 하였느냐고,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내 이런 수모를 당하게 하느냐고 어리석게 보이지만 심각한 항의 기도를 하였다. 그 다음날 똑같은 서류를 가지고 다시 오빌에 가니 어제 일이 미안했는지 그 사람이 웃으며 비자를 찍어 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나와 비자를 보니 한달을 찍어 준 것이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고 오기가 생겼다. 그 당시 처음으로 '준 영주권'(여권 기한까지만 거주를 허락하는 주민등록증)제도가 생겨 그것을 신청하였다. 24가지의 서류를 준비하여 한달만에 신청을 하고 6개월을 기다렸더니만 '준 영주권'을 내어 주었다. 지금도 그 덕을 보고 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선교사로 떠날 때 가장 고민되는 문제는 아들이었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들의 속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다. 먹으면 토하고, 설사하고, 밥을 한번 먹이려면 밥그릇을 들고 두 시간을 따라 다니며 먹여야만 하였다. 돌때 선물로 들어온 옷을 세 살이 될 때까지 입혔다. 그 아이가 선교지로 떠날 때 9살이었다. 그 때까지도 사람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리고 선교지로 간다는 것이 무리였다. 더군다나 당시 선교지의 의료 환경이 우리나라 보건소만도 못하였다. 그렇지만 가족이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기로 하고 3년을 먹일 수 있는 장약을 준비하였다. 약만 한 가방이었다.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너무나 긴장되었다. 말도 모르고, 길도, 문화도, 사람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매 순간이 긴장되고 초조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그것을 느끼었는데 아이는 그동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매일 같이 약을 먹어야 하는 아이가 며칠을 약을 먹지 아니하고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는 점점 건강해지고 준비했던 장약은 한 알도 먹지 않고 모두 버렸다.
 
그 아이는 선교지에 있는 동안 병원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딸도 아들도 말 한마디 못했지만 현지 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모두 끝냈다. 딸 아이는 피아노를, 아들은 국내의 대학을 마치고 모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다. 러시아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이 그에게 특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선교지에서 겪는 고난을 그냥 흘리는 법이 없다. 반드시 은혜로 갚으시고 고통의 크기만큼 복의 크기도 달리 주시는 것을 선교지에서는 너무나 많이 느낀다. 할렐루야!

카자흐스탄 김상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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