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국가대표', 캄보디아 민중을 만나다

[ 아름다운세상 ] 예장 노숙인선교협의회, 10주년 기념 캄보디아 사회선교훈련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09년 09월 02일(수) 15:45
   
▲ 베이스캠프였던 프놈펜기독교연합봉사관.
최근 스키점프 선수들의 꿈과 열정, 애환을 그린 영화 '국가대표'가 흥행에 성공했다. 비인기종목은 비단 스포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숙인선교 또한 일종의 '비인기종목'에 속한다. 지난 8월 24∼29일 총회 사회봉사부 산하 예장 노숙인선교협의회(회장:안승영) 20여 명의 회원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연일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장을 잠시 뒤로 하고 연수를 떠난건 사실상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캄보디아의 사회선교현장을 살펴보며 향후 노숙인선교협의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주목적으로,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회원들간의 멤버십을 강화하는 데도 초점이 맞춰졌다. 베이스캠프는 프놈펜기독교연합봉사관. 한아봉사회(이사장:김영태) 캄보디아 코디네이터 송준섭선교사가 현지에서의 모든 훈련일정을 진두지휘했다.

캄보디아는 잔혹한 역사를 지닌 나라다. 사람들의 미소짓는 눈빛속에도 슬픔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에 내재돼있는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일행은 먼저 뚤슬랭(Toul Sleng) 감옥을 방문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폴 포트 정권 당시 'S21'로 통하던 뚤슬랭은 2만 여명이 고문을 받고 처형된 정치범 수용소다.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 순간, 안경만 끼고 있어도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는 설명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뚤슬랭에서 고문받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킬링필드 '총엑(Choeung Ek)'으로 이동한 일행, 해골이 수북히 쌓인 위령탑과 대규모 매장지를 둘러보며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은 양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얼굴마다 드리워진 먹구름이 걷힌 건 벙레앙청소년센타를 방문, 또랑또랑한 눈망울마다 희망이 자라고 있는 모습의 학생들을 만났을 때다. 좁은 공간이지만 도시빈민 청소년을 위한 학습의 장이자 주일에는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센타의 밖에서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이 '노숙인의 천사'로 소개된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총무 정요섭목사(햇살보금자리)는 "뚤슬랭과 킬링필드를 방문하면서 오전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역시 다음세대가 희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문해교육사업과 사랑의집짓기프로젝트 등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롱웽마을, 생명평화마을. 작은 트럭에 몸을 싣고 마을로 들어가 캄보디아의 민중과 마주한 일행은 매일 살을 맞대며 생활하고 있는 한국의 민중을 떠올리며 지친 마음을 떨치고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했다. 마을의 아이들에게 문구류와 간식세트 등을 전달하고 돌아가는 이들의 양손엔 '감사'라는 선물보따리가 가득했다.

   
▲ '국가대표'급 노숙인 섬김이들. "단결"을 외쳐달라는 요청에 일순간 단합된 모습이 연출됐다.

정책토론의 시간. 참석자들은 조심스레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월세방을 전전하면서도 주민들의 반대로 '한밤중 이사가기'엔 이력이 났다는 강릉 희망의집 최윤구실장. "희망만 없고 다 있더라"는 그의 말엔 해학으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평소 모습이 묻어난다. 들무새공동체 김홍기목사는 "25명을 데리고 산다는게 정신없이 바쁘고 쉽지 않다"면서 "솔직히 돌아가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하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미인가시설로 반찬을 구하러 가기 위한 차를 빌려야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라고. 결혼 25주년만에 신혼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참석했다는 김 목사 부부에게 회원들은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해 캄보디아 현지에서 잊지못할 축하파티를 열었다. 나눔이 삶에 베인 이들. 마음이 열리고 한 번 봇물이 터지자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고, 밤늦은 시간까지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조언하고 차이도 발견하며 상대방의 사례에서 배우고 고충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노숙인 일하는 사람들에겐 밤낮이 없습니다." 누군가 던진 이 한마디에 전쟁터와 흡사하다는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회장 안승영목사는 힘겨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노숙인을 돌보고 있는 이들을 가리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노숙인들은 한마디로 끝까지 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노숙인선교를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고생이 많습니다. 건강이 안좋은 사람도 많구요. 끊임없이 사랑을 퍼줘야 하는데 때로는 한계가 있어요. 이번 캄보디아 연수로 재충전하며 자신을 정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날 일행을 떠나보내며 송준섭선교사는 "캄보디아 보다 훨씬 더 땅끝에 있는 분들"이라며 "친구들이 온 것 같은 느낌으로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러분이 잠시나마 현장을 떠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했다"고 했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일행, 다시 보니 가슴엔 십자가의 흔적이 선명하다. 태극마크 대신 십자가를 새긴 이들,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였다.

"노숙인 선교에 단편적 접근은 금물"
    
   
▲ 회장 안승영목사.
요즘 경기의 체감온도는 IMF때보다 더 춥고 시리기만 하다. "실업은 눈에 보이는 문제일 뿐이에요. 위기감, 의지상실, 양극화 심화로 인한 상실감, 가족해체 등 수반되는 문제가 더 많습니다." 예장 노숙인선교협의회 회장 안승영목사는 "최저생계층보다도 최하위에 있는 노숙인들이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말 보람된 일"이라고 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보듬는 것은 교회의 우선과제이며 한 사람이라도 가정으로 돌아가고 회복되는 모습을 볼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지만 안 목사는 "일회적인 구제 보다 전인적 종합적 치유와 돌봄이 요청된다"면서 노숙인선교에 단편적 접근은 금물이라고 했다. "공공기관이나 교회마저도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삶의 의지를 상실한 노숙인들이 회복되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고 기다리시듯 교회도 그렇게 노숙인들을 바라봤으면 한다"고 인식의 전환을 주문했다.
 지난 2005년 조건부 신고시설로 정부정책이 변경되면서 정신신고시설이 되기 위해 기존의 인가시설도 오는 2010년 1월까지 소정의 기준을 갖춰야 하는 상황. 다행히 2년 유예된 상태다. 그는 "좋은 취지를 갖고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대부분 열악한 형편으로 협의회의 법인등록 등 총회 차원에서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뚤슬랭감옥, 웃음조차 금지된 아픔의 공간.

   
▲ 그러나 캄보디아의 '내일'인 아이들로 인해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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