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계획

[ 땅끝에서온편지 ] (1) 선교사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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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9일(수) 14:36
   
▲ 알마아타에 세워져 있는 시온교회의 모습. 현 사역의 중심지이다.

요즘 들어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지 가뜩이나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에 대하여 조심하게 되고,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을 드러낸 부분에 대하여 많은 회개를 하고 있던 차 원고 청탁을 받고 많이 망설였다. 이것이 또 하나의 나를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에 많은 부담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 특히 우리 교단의 선교정책 가운데 늘 마음에 불만을 품고 있던 것이 있어 그것을 내 스스로 고쳐보려는 마음에서였다.
 
그것은 시니어 선교사들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험과 실수와 시행착오들을 겪어 온 시니어들의 경험은 교육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한 지역 안에서의 경험은 그 지역 안에 있는 사람만이 안다. 그 경험은 다음에 선교사로 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좀 더 효과적인 선교를 위하여 이러한 경험은 반드시 나눠야 하는 것이고 또 자료화해야 한다. 그러기에 나의 조그마한 경험을 나누려 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준비되지 못한 선교사였다. 신학교 시절 한 번도 선교사 파송 연구회에 참석한 적도 없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기도한 적도 없고 헌신한 적도 없다. 그러던 내게 1991년 2월 어느 날, 만난 적도 없고 교제한 적도 없는 미국 워싱톤의 한 이민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선교사 제의를 받았다. 그 교회는 메릴랜드에 있는 시온교회로 이순각목사께서 시무하시는 교회다. 그 목사님은 당시 칠레에 선교사로 있던 나의 친구로부터 소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미 교회 파송선교사로 정하였으니 마음을 정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이민교회였지만 선교사 파송을 위해 3년을 기도했다고 했다. 그러기에 나를 만나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3년 만에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너무나 급작스런 제의였지만 그 목사님의 믿음이 너무나 감동적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러겠다"고 응답하였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선교사로 가기로 하였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 후 몇 번 연락을 하면서 선교지가 중미의 도미니카라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가깝고 그 교회가 자주 왕래하며 함께 선교를 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도미니카를 선교지로 정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결정을 하고 난 후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때부터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준비하다가 그 해 5월, 답사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게 됐다. 미국에 가서 처음으로 이 순각 목사님을 만났고 첫인상은 마치 시골 이웃집 아저씨 같았지만 대화하는 내내 그 분은 선교에 거의 미쳐있는 분이었다. 선교에 대하여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너무나 배울 것이 많은 분이었고 사실 내가 나갈 것이 아니라 그분이 선교사로 나가면 아주 효과적으로 선교를 이룰 것 같은 준비된 선교사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이었다. 답사를 위해 미국에 도착하였을 때 목사님은 이미 도미니카를 다녀오셨고 목사님의 마음에는 선교지를 바꾸기로 정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구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를 하여 미국에 있는 많은 이민교회 목사님들이 소련을 다녀왔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목사님은 소련을 다녀오신 몇몇 목사님을 만나게 하였고 그 목사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선교사로 나가려면 황금어장인 소련으로 가라고 하셨다.
 
선교지가 소련이라는 데에는 더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미 나가기로 결정한 바에야 어디를 가든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991년 6월 다시 미국의 뉴욕을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갔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아찔하였다. 이것이 진정 공산주의 종주국의 수도인가를 의심하게 되었다. 공항검색대는 너무나 삼엄했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화장실은 벽도, 문도 없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가는 내내 마치 죽음의 도시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은 웃음이 없이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평안함을 느낄 수 없었고 모든 가게는 텅텅비어 있었다. 크렘린 궁 옆에 있는 러시아 호텔에 여정을 풀고 붉은광장에 나가 전도지를 나누며 사람들과 어설픈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말하지 못하였다. 황혼이 기우는 가운데 박물관으로 변해버린 바실리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홀로 눈물을 흘렸다. '복음을 잃어버린 교회, 예배를 잃어버린 교회'를 보며 지금의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도 들었다. 며칠 머무는 동안 먹을 것도, 먹을 곳도 없었다. 결국 우리 일행은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수도)로 가기로 하고 비행기 표를 구해 오라고 고려인에게 부탁했더니, 온 종일이 걸려 온 이 고려인은 타슈켄트 가는 비행기 표가 없어 알마아타(현 알마티)로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왔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처음부터 그러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의 강력하신 인도하심으로 이끄셨다.
 
우리 일행은 5시간의 비행 끝에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 도착했다. 한 여름에 눈 덮인 천산산맥은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그 천산 기슭에 자리 잡은 녹색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알마아타는 온통 나무숲으로 덮여 있었다. 도시는 조용하고 녹색의 나무로 덮여 있으며 하얗게 눈 덮인 천산이 병풍처럼 펼쳐 있는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게 보였다. 그러나 도시의 내부는 모스크바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처음 도시를 접하는 순간 하나님은 내 마음에 강력하게 이곳이 내가 일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 순각목사님은 교단에서 처음으로 파송 받는 소련 지역의 선교사이니 만큼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니 모스크바에 머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지만 나는 결국 알마아타를 선택하였다. 아니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끄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나의 선교는 시작되었다.

카자흐스탄 김상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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