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ㆍ평신도 협력 모델 제시

[ 칼빈탄생5백주년 특집 ] (28) '칼빈의 직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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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9일(수) 14:33

칼빈에 대한 소개는 대개 그가 위대한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최근 칼빈연구에 의하면 칼빈은 제네바에서 목회한 프랑스계 이민자 목사였다는 소개가 가장 먼저 나와야 할 듯하다.
 
칼빈의 신학사상에 대한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과되어왔던 목사 칼빈과 그의 종합적 목회에 대한 연구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이 칼빈 탄생 5백주년을 맞는 세계학계의 동향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이었던 칼빈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제네바 교회들을 돌보며 다양한 목회를 펼쳤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상당히 신나는 일이다. 신학사상을 통하여 지나간 일들을 재구성할 때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칼빈의 삶과 영향력이 그의 목회 속에서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으로 바꾸어지기 때문이다.
 
칼빈의 목회는 4중직을 4개의 기관과 연결한 종합적인 목회를 하였다. 본 글에서는 4중직으로 대표되는 칼빈의 직제 이해와 실천을 통해 칼빈이 정착하려고 했던 목회자와 평신도의 동료적 파트너십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6세기 당시 가톨릭교회의 지나친 사제중심주의는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었기에 이에 저항하였던 개신교종교개혁자들이 재세례파처럼 아예 직제를 없애는 방법을 고려했을 만도 하다. 직제가 없이도 하나님은 교회를 다스리시고 그의 권위와 최고되심이 말씀에 의해 드러내실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천사들을 통하여서 교회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실제적이며 성경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보이시지 않는 존재로 우리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다스리고 싶어 하시는가? 그는 마치 일하는 사람들이 공구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의 목회'라는 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전하기도 하시고 사역을 나눠주신다고 믿는다.
 
사람들의 목회를 통해 교회가 다스려지는 것은 마치 중심 힘줄에 온 몸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교인들이 한 몸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때 성도들은 온전하게 되며 봉사의 일을 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몸은 세워져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개혁적 교회가 사용할 직제는 구약성서보다 신약성서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지난 5월에 방한한 미국 프린스톤신학대학원의 교회사 교수인 엘시 맥키의 집사직에 관한 저서 'John Calvin on the Diaconate and Liturgical Almsgiving'과 장로직에 관한 연구 'Elders and the Plural Ministry'는 신약의 관련구절에 대한 주석이 칼빈의 직제 이해와 실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탁월한 연구서이다. 칼빈은 사도나 선지자나 복음전하는 자와 같은 직제가 한시적인 것에 반해 집사, 장로, 교사, 목사는 영구적으로 필요한 직제로 이해하였다. 에베소서 주석에서 그는 목사와 교사는 고대로부터 사실상 하나라는 주석이 있었음을 언급하면서도 목사는 교사의 기능을 하지만 교사가 다 설교자는 아니라고 말하며 두 직분을 구분하고 있다.
 
칼빈의 4중직 이해와 실천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4중직의 목회는 교회만이 아니라 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16세기라는 시대적 특성을 알아야 이해된다. 두 번째로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협력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가톨릭의 사제중심주의와 재세례파의 회중주의와 구분되는 것이다. 정부와의 협력 하에 개혁을 시도하였던 종교개혁자들(루터, 츠빙글리, 부처, 칼빈 등으로 대표됨) 중에서 칼빈은 가장 철저하게 목회자와 평신도의 연합사역 모델을 정착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칼빈의 4중직은 4개의 기관과 함께 일하는 효율적인 구조 속에서 발전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칼빈의 4중직은 직분의 기능을 중시하고 있다. 사람들의 목회라는 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실현하시기 때문에 각 직분은 맡은 바 기능을 잘 감당하는 동안 유효성을 갖는다. 목사가 그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면직될 수 있는 것처럼, 장로는 해마다 선거를 통하여 자신의 사역 내용을 평가받았고 집사들 역시 사역을 평가받아 재임용될 수 있었다. 모든 직분은 각각의 기능이 중시되었기에 장로였던 사람이 나중에 집사도 되기도 하였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 하겠다.
 
칼빈의 4중직 이해는 4개의 직분이 협력하여 완성되는 복수 목회를 지향한다. 각 직분은 교회전체 목회에서 고유한 기능을 담당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예를 들어 목사의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성례를 바르게 집례하여 교회의 표지를 세우고, 성도들이 성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다. 칼빈이 제시한 성도의 표지는 '신앙고백, 삶의 모범, 성례전에의 참여'인데 목사가 설교를 통하여 들리는 말씀을, 성례전을 통하여 보이는 말씀을 바르게 제공하는 것은 성도들이 그들에게 합당한 표지를 갖추게 만든다. 교사는 학교에서 또 제네바아카데미에서 가르치면서 말씀과 교리가 건전하게 세워지고 전달되어지는 것을 맡았다. 장로들의 기능은 컨시스토리에서 목사들과 함께 성도들의 삶을 돌아보고 교육하며 교정하는 것이다.
 
1556년에 컨시스토리는 일반심방을 시작하면서 성도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폈는데 이 기능 역시 제네바 시민들이 성도의 표지를 골고루 갖추며 살도록 점검해주고 도와주는데 목적이 있다. 평신도의 대표인 장로들은 시의회의원으로 선출된 사람들 중에서 뽑혔는데 이는 시민 전체가 교인이었던 16세기의 작은 도시 제네바에서 굳이 장로를 새로이 선출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네바 시민으로 기반세력을 공고히 다지고 있었던 장로들은 칼빈을 비롯하여 프랑스계 이민자 목사들을 경계하였고 취리히처럼 시정부가 교회도 간섭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칼빈의 정교분리 원칙은 결국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집사는 "가난한 자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하시며 그들을 돌볼 것을 암시적으로 위탁하신 예수님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교회의 실천에 근거하고 있다. 집사는 행정담당집사와 실무담당집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교회의 임명을 받고 종합사회복지기관에 해당하는 제네바병원에서 일하였다. 이들의 사역은 환자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여행객, 종교난민들을 돌보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포함하였다. 프랑스난민들을 돕기 위해 칼빈이 시작한 프랑스기금 역시 집사들이 관리하였다.
 
4중직은 4개의 기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목사는 목사회와, 교사는 제네바아카데미와, 장로는 컨시스토리, 집사는 병원과 긴밀하게 전략적으로 연결되어 제네바시와 인근 지역의 사람들을 개신교의 원리에 따라 살도록 보살폈다. 목사와 교사에 대해서는 시정부가 임면권을 가지고 사례비도 지불하였다. 그러나 목사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전문가 집단인 목사회가 담당하였다. 목사회는 이외에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성경과 교리지식을 새롭게 하여 자질 향상을 도모하고 상호비판을 서슴지 않는 자정역할, 가톨릭의 핍박하에 있던 교회들을 돌보는 목회지원 및 선교활동도 하였다. 평신도 사역자인 장로와 집사 역시 사례를 받았는데 장로는 컨시스토리에 참여하는 만큼 사례를 받았고 집사들은 풀타임사역자로서 시정부로부터 사례를 받았다. 기관을 통한 협력목회는 시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의미한다. 칼빈은 시정부가 교회의 고유한 권리를 간섭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지만 대부분 시정부와의 협조를 통해 제네바시를 개혁하였다. 제네바에서 잠시 망명생활을 하였던 존 녹스가 제네바를 가르쳐 '그리스도의 완벽한 학교'라고 찬양한 것은 4중직을 통한 칼빈의 복수목회가 매우 효과적이었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칼빈은 4중직을 하나님의 구원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한 목회의 도구로 이해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인간들의 목회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로 작정하셨기에 직분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께는 감사함으로, 직분자들끼리는 겸손함으로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기능을 감당하는 동료적파트너십을 이루는 것은 칼빈이 이해하고 실천한 4중직을 통한 복수목회의 핵심이다.

이 정 숙
▲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 아세아연합신대(목회학  석사)
▲ 프린스턴신학대(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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