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과연 무엇인가?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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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3일(목) 14:12

한경호/목사ㆍ횡성영락교회 

우리나라의 목사님들이 동구라파를 여행하는 중에 그 곳의 목사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 목사님은 "공산주의 나라에서도 참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까?"하고 물었다. 반공의식이 투철한 그는 공산주의 국가의 기독교는 대외용 꼭두각시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질문을 받은 그 곳 목사님은 대답 대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진정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까?"하고 되물었다. 

참된 신앙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고 지키려는 집착과 탐욕이다. 많이 소유함으로써 쾌감과 만족을 느끼려는 인간의 본성은 매우 제어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나님께  자꾸 무언가를 달라고 요구한다.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생활은 자기 것을 포기하고 버리는 것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생활이다. 그것이 참된 은혜요 축복이다.

오늘날처럼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끝없이 증폭시키는 때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질의 포로가 되었다. 자본의 논리는 교회 안에도 크게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다. 자본의 힘은 성령의 힘보다 훨씬 강하다. 많은 돈을 들여 도심지에 부지를 매입하여 교회 건물을 잘 지으면 목사가 누구인지 교파에 상관없이 교인들이 모여든다. 오랜 기간 고생하며 개척하여 겨우 자리잡을만한 주변의 빌딩교회들은 곤욕을 치른다. 전출자는 있지만 전입자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은 이미 현장에서 실종된 지 오래이다. 교회 간에는 경쟁만이 남아있다. 교인은 고객이요 목회자는 영적인 서비스 제공자이다. 말씀은 상품이요 은혜와 축복은 헌금에 대한 대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얼마나 될까?

어느 목사가 열심히 새벽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아무데 있는 땅을 미리 사두라는 말씀이었다. 교인들에게 말하여 빚을 내어 샀다. 과연 수년 후 그 땅은 가격이 크게 뛰었다. 팔아서 보다 싼 곳에 부지를 매입하고 교회까지 짓고도 돈이 남았다. '능력의 종'이라는 칭송이 뒤따랐다. 이 정도면 갈 데까지 간 모습이다. 교회의 부동산 투기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늘의 풍토이다. 땅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보다 경제논리가 더 우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진정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목사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한국교회를 사로잡고 있는 큰 우상이 두 개 있다. '자본'과 '반공이데올로기'이다. 둘 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실제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우상이다.

교회가 너무 부(富)해졌다. 부는 속성상 권력-교권이든 세속권력이든-을 추구한다.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교회의 부패한 모습은 교회성장주의가 초래한 일탈현상이다. 극복하기 힘든 유혹이다. 나아가 성장주의와 물질숭배는 세속사회의 경제살리기와 한 통속이 되어 정교(政敎)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이데올로기는 반공이다. 한국사회와 교회는 아직도 반공 유령에 사로잡혀 있다. 죽은 공산주의가 산 기독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부와 교권과 반공이데올로기는 경제살리기와 독점적 권력의지와 적대적 흡수통일과 궤를 같이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인 생명살림과 정의로운 사회와 평화의 세상을 건설하기보다는 인간성을 박탈하면서 죽임과 불의와 전쟁으로 이 사회를 몰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과연 교회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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