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조준형선교사 <에필로그>

[ 땅끝에서온편지 ] 주님ㆍ선교사ㆍ후원자들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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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12일(수) 13:59
   
▲ 선교 초기 필자의 산족교회 전도모습.
교회는 우리를 선교지로 보내면서 5년을 견딜까 했다. 식구 4명이 꿈을 안고 선교지에 도착해 우연히 한인교회 사역을 위해 파송받은 선교사를 만났다. 그들은 은혜를 강조하는 교단에서 파송되었는데 나중에 그들이 "성령을 받지도 못한 선교사가 왔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에 우리 부부는 그 교단에서 하는 기도원에 가서 둘이 합해 예수님께서 하신 것보다 조금 못 미치는 금식기도를 하고 떠났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보였었나 보다.
 
존경하는 동기목사 한 분이 자주 필자를 소개 할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교지는 발판이고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선교지에서 오랫동안 잘 선교하고 있다."
 
선교지에 도착해 새문안교회 1백주년을 기념해서 선배선교사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한 선교사께서 안식년으로 태국을 곧 떠난다고 하시더니, 우리를 빤히 보시면서 "조 선교사님을 보니 심성도 그렇고 어찌 이 척박한 태국에서 견디실지 모르겠다"면서 염려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 우리를 두고 한 추측들이 맞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붙들지 않으셨다면, 만약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셨다면, 만약에 부족한 종들을 뽑으시고 흡족해 하시던 새문안교회 장로님들과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권사ㆍ집사님들이 아낌없이 후원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났던 사람들의 추측처럼 태국에서의 선교를 지속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마치 기르는 나무에 아낌없이 양분을 부어주듯 이름없이 빛도없이 기도와 물질과 사랑을 부어주셨다. 선교사가 부끄러워하며 힘들게 찾아갔을 때 눈치를 채시면서도 후원을 약속해주셨던 여러 분들, 태국 땅을 제 집 드나들 듯이 관심과 사랑을 부어주신 여러 분들, 강사비는 커녕 비행기표도 직접 준비해 오셔서 말씀으로 섬겨주신 그 많은 분들, 젊은시절 주님을 선교지에서 느껴보려고 젊음의 귀한 때를 드린 그 많은 청년들, 한국이 경제의 어려움으로 신음하고 교회가 선교를 접으려 할 때, '그때가 바로 선교할 때'라며 불 같이 선교에 동참하는 수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선교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 분들이 존재하는 한 선교는 진행형이다. 나귀새끼를 묶어 놓은 채 주님의 사역에 쓰임 받기를 기다리면서 드리고 난 후에 오직 기록되기를 '나귀주인'이라고 만족해 하는 그 분들의 준비된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도 곳곳에서 주님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역사가 이어진다.
 
가족으로는 태국의 무더운 날씨에도 오랫 동안 에어콘 없이 지내며, 기숙사 내에서 현지 학생들과 함께 지나면서도 오히려 즐기고 기뻐하며 생활해 주었던 우리 아이들,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부모를 따라 시골로, 산으로 부모가 다니는 모든 곳에 불평 없이 동행해 주었던 아이들, 고등학생 시절에는 설교를 영어로 동시 통역하는 선교 협력자의 삶을 가졌던 우리의 아이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주님이 맡기신 일들을 감당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학교 기숙사 안에서, 센터 안에서 늘 현지인들과 함께하는 공개된 삶을 살면서 늘 눈물로 기도하는 동역자요, 벗이요, 든든한 후원자로, 지금도 건축하는 공사장에서 뙤약볕 아래 감독자(?) 아닌 감독일을 정말 열심을 다해 감당하고 있는 부인 이명화선교사, 그리고 지난 22년 간 떨어져 살면서도 '돌아와라, 외롭다, 보고 싶다'는 감정을 감추시고 단 한 번도 내색 없이 기도와 눈물로 지원하신 부모님들, 이 모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저희가 있다.
 
선교는 선교사 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분들이 함께 현장에서 부딪히고 땀흘리며 일구어내는 것임을 믿는다.
 
계속해서 지원과 후원을 기대한다. 지면을 통해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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