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자들을 돌보자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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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9일(수) 09:42

강신원/노량진교회 목사ㆍ기독교세진회 이사장

문화가 발전하고 물질 문명이 발달하여 풍요를 구가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범죄가 없는 평안한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기대는 착각일 뿐이다. 인간 내면의 심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을 창출하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나라에는 갇혀있는 재소자가 자그마치 5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증가 추세일 뿐만이 아니라 죄질도 날로 흉악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라"(히 13:3)는 말씀을 유념하며 재소자들을 돌아보는 사역에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로는 저들을 찾아가 위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수행생활을 하는 자라고 다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흉악범들인 것은 아니다. 고의적인 범죄자가 있는가 하면 무지중에 우발적 실수로 혹은 경제적 문제로 또는 교통사고 등으로 갇힌 자들도 있다. 그들로 사회에 대한 반감이나 좌절감 속에 낙담하며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돌보아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인 경우에 저들이 겪을 심리적 고통, 수치감 등을 치유해 신앙성숙을 도모해 주어야 한다.

두번째는 복음전도의 효과적인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단순히 실정법을 어긴 것 만이 아니라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제공해 주도록 해야한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게 해야한다. 현재 전국 각지의 48개 교도소와 구치소에는 1만 4천여 교도관이 저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도리어 결과는 기대에 반하는 것이 현실이다. 복음 밖에는 저들을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대안이 없다.

세번째는 재소자들의 가족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재소자들을 둔 가정은 대체로 경제적으로도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또한 상실감, 수치감은 평온한 마음으로 건강한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데도 커다란 상처와 고통이 되고 있다. 이웃으로부터도 소외당하는 아픔을 극복하기 벅차다. 저들도 재소자 못지않게 중요한 목회 대상이 된다. 물론 재소자나 그 가족을 돌보는 일의 궁극적 목표는 그들을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네번째는 교도관들도 돌봄의 대상이어야 한다. 현대 기독교도관들의 수는 2천 4백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들이 모두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재소자들을 돌볼 수만 있다면 그 효과는 지대할 것이다. 물론 비 기독교인인 교도관들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여 자기 직무를 수행케 하는 일은 재소자 선교에 지름길이다. 사실 저들도 항상 재소자들과 함께 생활함으로 심리적으로 피곤하고 자신의 업무에 권태와 회의를 갖기 쉽다. 우리나라 출소자의 재범율이 50%를 상회한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섯번째로 형목제도를 신설하도록 해야 한다. 군목제도를 통해 전군 신자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형목제도도 군목제도 못지 않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재소자 뿐만이 아니라 저들의 가정을 형목들이 곁에서 꾸준히 돌보는 일은 저들의 영육을 살리는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교도관들에게도 위로와 격려 용기 그리고 신앙적 사명감을 주는 일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목회적 방안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전국교회로 하여금 재소자 선교 사역에 동참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저들의 중요한 사역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 체류 외국인 1백만명 시대에 접어 들었다. 200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일일 평균 9백76명이 수용되고 있다. 세계선교에 중요한 자원이기도 한 저들을 복음을 들고 주님의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목회적으로 돌보는 일은 긴요한 시대적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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