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가시적 일치와 교회됨

[ 선교 ] 에큐메니칼 칼럼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7월 23일(목) 11:13

모처럼 휴가를 맞아 고향을 방문했다.
 
아무리 바삐 고향을 들러도 부모님의 엄명에 의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선산을 찾고, 고향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과 그간 많은 가르침을 받은 고향의 원로 목사님을 찾아뵙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기에 미망인이 되신 사모님을 꼭 찾아뵙도록 부모님은 종용하신다.
 
고향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은 항상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어릴 적에는 2백여 명 가까이 모이던 교회가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40여 분이 고향 교회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수천 명의 교인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더 힘겨운, 매우 떨리는 순간이다. 할머니 권사님들의 품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그분들이 들려주시는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난 어린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먼 산길을 넘고 물길을 건너오신 그분들 앞에서 평소보다 몇 곱절의 기도로 준비하지만 늘 부족한 마음이 남는다.
 
오락가락 장맛비에 이번 주간 농촌에서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장대비가 쏟아 부으면 논밭을 단도리하고 잠시 비가 그치면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농약을 뿌리고 호박과 감자 그리고 담배 수확이 한창이었다. 그 와중에 이번 주는 멀리 외국에 나가있는 본 교회 출신 목사가 설교한다고 평소에 잘 오시지 않던 분들까지 예배당을 빼곡히 매웠으니 어찌 떨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항상 고향교회는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다. 이번 방문에서 특별히 두 가지 일로 큰 은혜와 감동을 경험하였다. 설교단에 올라서자마자 예배당 뒤편에 커다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그리스도교 일치주간 포스터였다.
 
이 조그마한 시골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와 교황청이 공동주관하는 세계교회 일치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제네바의 실무자로서 큰 감격을 경험하였다. 두 번째로는 담임목사님께서 올해의 선교헌금을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활동을 후원하는데 사용하자고 광고시간에 제안하셨다.
 
제네바 본부의 엄청난 규모의 일년 예산에 견주어 보면 아마 미미한 액수의 헌금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 목사 하나를 온 교회의 기도로 길러내고 지구촌 어느 동네인지도 모르는 제네바에서 일하는 그 사역을 돕기 위해 꼬깃꼬깃 아껴둔 쌈짓돈을 모으는 그 깊은 사랑에 영적인 새힘을 얻었다.
 
교회의 하나됨은 선택적 조건이 아니라 진정한 교회됨의 표지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저희가 하나됨을 통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이다. 교회의 일치추구는 결코 교육과 봉사, 선교나 전도의 사명보다 가벼이 여겨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우리간의 장벽을 허물고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어느 신학자는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을 2천년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그러나 세계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제네바와 로마 그리고 서울에서 벌어지는 저 먼 곳의 사건으로 인식되어져서는 안 된다.
 
이땅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참여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열린 운동, 아래로부터의 운동, 일상의 영적운동이어야 함을 이번 고향 방문을 통해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금 주 섭
목사ㆍ세계교회협의회
선교와 전도위원회 총무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