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성도운동의 목회적 의미

[ 특집 ] 7월 특집 3백만 성도운동의 역할, 신학적 의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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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1일(화) 19:03

김의식/목사ㆍ화곡동교회

3백만 성도운동은 지난 해 말부터 우리 교단 2백68만여 명 교인에서 32만명을 전도하여 내년 말까지 3백만 명을 달성하고자 시작되었다. 이번 전도운동에 대해 숫자나 늘리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소극적으로 임하는 목회자나 교인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3백만 성도운동의 목회적 의미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방관만 하지 않고 이 3백만 성도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예수님께서도 선언하셨듯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도 수많은 죄인들과 병자들과 세리와 창녀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또한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 등의 비유를 통해서 잃은 영혼의 구원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길과 산울타리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고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그토록 강조하셨을까?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높고 귀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까지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가시면서 조차도 우리에게 이 전도의 사명을 간곡히 부탁하셨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성육신의 진정한 의미와 마지막 분부를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며 전도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전도 현장은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우리 교회들이 이 어둡고 부패해 가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은커녕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하여 온갖 갈등과 분열로 오히려 세상의 실망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까지 부르는 비참한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

2005년 인구 및 주택센서스 종교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불교는 4%, 가톨릭은 74% 이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인 반면에 개신교 인구가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이 5년 안에 개신교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이다. 우리는 이 같은 개신교의 현주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수적 증가의 차원보다는 개신교 존립의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복음적인 삶의 회복과 더불어 전도의 열정을 새롭게 불태워야 할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 때 사탄은 우리 교회들을 허물기 위해 교활하게 간계를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주님의 교회들이 내부의 진통과 분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쓰러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가 영적 싸움을 이겨 내고 살아남으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각성하며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전도를 하지 않는 교회는 영적으로 생명력을 잃고 더욱 정체되며 교회 내부의 더 큰 문제에 휩싸여 힘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전도하는 교회는 영적인 힘을 얻어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뿐만 아니라 뜨겁게 부흥함으로 교회의 진정한 사명인 선교와 양육과 치유와 봉사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총회는 원입교인을 포함하여 2009년 5월 25일 기준 2백68만5천5백42명이던 교인수가 3백만 성도운동에 박차를 가함으로 7월 21일 현재 11만8천4백11명의 새신자가 등록되어 2백79만3천4백83명에 이른 것이다. 앞으로 내년 말까지 1년 6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남은 기간 동안 온 교회가 합심합력 하여 복음을 전한다면 남은 25만5천9백56명을 전도하여 3백만 전도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전시 효과를 위해서 전도를 한다면 주님도 기뻐 받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동원의 의미밖에 안 되고 그 이상의 어떠한 효과나 열매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날 초대교회 성도들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민족의 환난의 역사 속에서도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로 주님의 재림의 소망 가운데 영적으로 깨어서 종말론적 신앙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지옥불 못에 떨어져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목회현장은 너무도 분주하고 험난하다. 대면해야 할 사람들과 일들이 산재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도운동을 축소하거나 간과한다면 이것은 기독교의 장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막을 여행할 때 짐이 무겁다고 하여서 물을 먼저 버린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 하다. 현재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은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알 아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높은 호텔이 되었고, 곧 완공을 눈앞에 두고 삼성건설이 짓고 있는 부르즈 두바이(160층, 810m, 5.2조 예산)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고  이미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인지도를 보면서 아랍에미리트와 이웃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마일 하이 타워(The Mile High Tower)'라는 이름으로 1.6km 높이의 건물(13조 예산)을 지으려고 다국적인 팀을 구성하여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장단기의 계획을 가지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복종하여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는 3백만 성도운동을 발판으로 우리 한민족 7천만 명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1년, 5년, 10년, 20년, 50년 그 이상의 구체적인 전도계획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길거리에서 하는 노방전도, 가정을 방문하여 하는 축호전도, 대규모의 인원을 교회로 인도하는 총동원전도 등이 있는데 이러한 전도를 통해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정착을 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현대에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관계전도이다. 먼저 전도목표로 하는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섬기며 사랑의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신뢰 관계가 회복된 후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를 통해 전도된 영혼은 쉽게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잘 정착할 뿐만 아니라 연장하여 양육도 잘 이루어질 것이다. 초대교회는 바로 관계전도를 통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화곡동교회는 지난 11년 간 큰 갈등과 분열의 위기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온 교회가 주님 앞에 엎드려 새벽기도로부터 시작하여 오전ㆍ오후 중보기도, 철야기도에 이르기까지 기도로 매어 달리면서 심령을 치유하고 양육하는 프로그램들을 실시하며 삶을 통한 전도와 선교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온갖 시험을 다 이겨내고 오히려 교회는 갑절로 부흥하고 성전 건축까지 시작하는 놀라운 승리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기적의 역사를 이루는데 지속적인 전도운동은 교회를 살리는 큰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전도가 교회의 살 길임을 각성하며 복음의 열정에 불타서 온 성도들이 1인당 1명 이상,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들이 1인당 3명 이상 꾸준히 전도해 나간다면 주님께서 가장 먼저 기뻐 받으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살아나게 되고 3백만 성도를 훨씬 뛰어넘어 이 민족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며 역사를 이끌어가는 영향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3백만 성도운동의 진정한 목회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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