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와 신학

[ 디아스포라리포트 ] '호주 연합교회'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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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1일(화) 18:53

양명득/목사ㆍ호주연합교회 NSW주총회다문화목회부 총무

디아스포라에게도 신학이 있을까? 아니 하나님의 디아스포라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짐을 당하였다는 경험 자체가 신학의 전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신학적 내용은 무엇이며, 전통적인 신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신학'이란 단어가 단순하지도 또는 순진하지도 않은 용어임을 안다. 이민이란 단어와 비슷하게 신학도 누가하느냐, 어느 교단이 하느냐, 누구를 위해 하느냐, 어디서 하는냐, 언제 하느냐, 왜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아스포라 신학도 여러 이민자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경험하는 신앙의 표현이므로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한 체계적인 학문이고 그 연구과정이라고 한다면, 디아스포라신학은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경험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표현하는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예수는 우리 이민자에게 누구이신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현재 디아스포라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사를 하고 계실까? 여러 민족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 중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떤 고침과 구원이 필요한가? 우리는 얼마만큼 한국 문화성을 유지해야 하고 또 얼마만큼 세계인이 되어야 하는가? 복음과 문화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디아스포라신학은 '다차원적이고, 다중심적이고, 그리고 다언어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응답하는 훈련이다.

1백40여 개의 민족들이 디아스포라가 되어 호주 땅에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성읍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또 여호와께 기도할 수 있을까? 단순히 복지적이나 선교확장적인 차원을 넘어 실존적이고 신앙적인 축복을 줄 수 있을때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곳에서부터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인데, 신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예를들면 우리는 베트남, 중국, 이탈리아 등의 식당을 즐겨가는데, 영적으로 실존적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하나님의 형상을 확인해 주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고침을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다문화 호주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디아스포라 신학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민신학은 다문화신학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민목회는 다문화목회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다문화라고 하면 보통 영어로 'multicultural'로 표기되는데 이 영어 단어는 호주사회 안에서 여러 정치적인 논쟁과 더불어 부정적이고 분열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문화 목회'하면 많은 호주교인들이 일단 거부감부터 보이는데 이것을 지향할 수 있는 단어가 'cross-cultural'이다. 이 단어는 다문화 혹은 초문화로 번역되는데 'cross-cultural theology'(다문화신학)나 'cross-cultural ministry'(다문화목회)는 이민을 오는 자들과 받는 자들이 함께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크로스(Cross)'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예수의 십자가는 고난, 오해, 배신, 희생, 사랑, 죽음, 희망 등의 이민자들이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cross'의 또 다른 뜻은 교차로로 문화와 문화가 만나 다민족적 활동과 도전이 있고, 개인과 집단이 회심을 경험하고 있는 곳이다. 'cross'는 또한 '화가 났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모습이 있으므로 그런 부정의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뜻으로도 말하여질 수 있다.

그러므로 다문화신학은 디아스포라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목회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신학작업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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