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눈깔 붙이기도 버거운 이들이 만드는 사랑 이야기

[ 아름다운세상 ]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사랑방, 브니엘의 집 "힘들어도 우린 가족이죠"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09년 06월 02일(화) 15:50
   
▲ 브니엘의 집, 박상준원장은 이곳이 가족 공동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만큼 '가족'들 간에 우애가 두텁다. 생면부지의 '남'들이 가꿔가는 사랑 공동체인 브니엘의 집이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장창일기자

"여기있는 사람들이요? 모두 가족이죠. 더 없이 사랑스러운 가족이랍니다."
 
서울시 구로구 구로본동의 어느 골목길. 그 골목의 한 구석에 '브니엘의 집'이라는 간판이 우뚝 서 있다. 방문한다고 광고를 한것도 아닌데 이 집 식구들 몇명이 집앞에 나와서 미소로 기자를 반긴다. 들어서니 30명의 가족 중 열명 남짓이 모여 TV를 시청하고 있다.
 
"원장니임~ 원장니임~" 박상준원장에게 기자가 온 것을 알리는 소리가 온 집을 울린다. 사회복지사인 박상준원장은 본인도 지체장애 1급의 중증 장애인이지만 동변상련의 이웃을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이곳에 터를 잡은 게 어느덧 13년 째이니 세월의 연륜이 가볍지 않다. 그만큼 장애인들만의 가족 공동체가 걸어온 시간은 길었고, 그 기간 동안 생존을 위해 힘겹게 싸워온 투쟁의 역사는 가족들의 기억 속에 선명한 나이테로 남아있다.
 
브니엘의 집은 흔히 말하는 장애인 그룹홈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박상준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냥 집이죠". 박 원장의 설명이 짧고도 명쾌하다. "정신지체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지체장애인들의 고통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주변에서 챙겨 줘야할 뿐 아니라,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대책없이 세상과 마주하기 일쑤죠. 이곳은 이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비슷한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사는 집입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대책이 없다'는 말은 정신지체장애인들의 현 주소를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말이다. 실제로 부모의 보호를 받던 정신 지체장애인들이 부모 사망 후 형제들로 부터 보호를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시설로 들어가는 것도 여러가지 제한이 있어 쉽지 않고 그나마 브니엘의 집과 같은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건 행운 중에서도 행운이다.
 
정신 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가정이 전국에 3백 50개 수준. 이중에서도 브니엘의 집처럼 30명 정도가 생활할 수 있는 곳은 극소수다. 대다수 정신 지체장애인들의 삶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브니엘의 집 사람들은 뭘 하면서 지낼까. 여러가지 많은 것들을 했었지만 현재는 모두가 백수다. 개중에는 학생도 있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은 없다. "놀면 뭐해. 인형 눈깔이라도 붙이지~"라고 내뱉을 수야 있지만 1급 정신 지체장애인들이 할수 있는 극히 드물다.
 
"공정이 2단계만 넘어가도 불량율은 50% 이상입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는 빨간색 저금통에 스티커 눈알을 붙여야 한다고 해보자.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정확한 위치에, 스티커의 위와 아래를 구별해서 붙여야 한다는 것. 단순히 붙이는 게 첫번째 과정이라고 한다면 정확한 위치를 찾고 모양까지 구별해 붙이기 위해선 모두 세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불량율 50%의 고지는 이토록 쉽게 정복된다.
 
그동안 했던 일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건 핸드폰 충전기를 비닐봉투에 넣는 일이었다. 이것도 사회복지사들이 충전기와 코드를 가지런히 정리해 줬을 때의 이야기다. 이렇게 작업해서 벌어 들이는 돈이라고 해봐야 개당 5원 수준. 하루에 1천개를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수입은 5천원 꼴이다.
 
   
▲ 브니엘의 집 식구들의 표정이 다채롭다. 우측에서 두번째가 박상준원장. 그 또한 지체장애인이지만 브니엘의 집을 이끄는 선장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런 그도 최근 후원금이 급감하는 현실의 벽은 넘기 버거운 장벽이라고 말한다.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사진/장창일기자
이쯤되면 '뭘 먹고 사냐'는 질문이 나온다. "전적으로 후원입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보니 후원금이 브니엘의 집의 목줄을 쥐고 있다. 식비며 학비, 기저귀 등 각종 비용 등을 최소로 잡아도 한달에 6백 만원은 후딱 깨진다. 개인 후원자가 1백50명 정도. 이들을 통해 조성되는 기금이 없으면 브니엘의 집도 버틸 수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후원자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브니엘의 집을 가꿔오면서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한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아요. 좋아서 하는 일이고 보람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솔직히 힘들어요. 정말 힘드네요." 이 말과 동시에 박상준원장의 눈빛이 흔들린다.
 
큰 꿈이 있는 건 아니다. 중증 장애인들이지만 이들도 평범한 가정의 구성원들처럼 행복하게 살수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하는 것 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실현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는 게 박상준원장의 말이다. "바람직한 사회복지의 모델은 중증 장애인이더라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느끼며 가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장애가 있어서 불행을 겪는 것 자체가 새로운 불행을 낳는다고 봅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 쯤 브니엘의 집에서는 한바탕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올해 55세의 김광수아저씨가 '아리랑'으로 포문을 얼었고, 이에 질세라 박주현 양(18세)이 '개똥벌레'를 부른다. 이렇게 개인전이 이어진 뒤 브니엘의 집에는 교회학교 찬양인 '싹트네'가 무용과 함께 울려 퍼진다.
 
"찬양 부를 때가 가장 좋아요. 율동도 하구요.(웃음)" 내년이면 스무살이 되는 이수연 양의 말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브니엘의 집 가족들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간단하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따뜻한 관심. 그것 뿐이다.

*브니엘의 집에 사랑을...

브니엘의 집은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개인운영신고 시설이다. 다시 말해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만으로 변화무쌍한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살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해 겨울에도 브니엘의 집은 월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일찻집을 열었을 정도. 매달 살아가는 것이 이들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과업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니엘의 집 식구들은 정신지체와 자폐, 뇌성마비 1~2급의 중증 장애인들로 혼자서는 식사 뿐 아니라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때까지 사회복지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을 졸졸 따라 다닌다고 하더라도 빈틈이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일은 시작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끝내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박상준원장은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다 보니 후원자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며, 심각한 현실을 설명한다. 브니엘의 집은 늘 생존을 위해 목마르다. 이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시급하다. 후원과 관련된 문의는 홈페이지(www.vniel.or.kr)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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