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한 여행이었어요"

[ 아름다운세상 ] 장애인주일 맞아 장애인, 비장애인 함께한 제주도 여행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09년 06월 24일(수) 11:30
   
▲ 지난 18~20일 대구 둥지교회가 교회창립 15주년 및 장애인주일을 맞아 실시한 비장애인, 장애인 제주여행에는 휠체어를 탄 25명의 중증 지체장애인과 30여 명의 청각, 시각, 경증 지체장애인들, 그리고 13명의 봉사자들이 함께했다.

이국적인 자연과 문화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도. 내국인부터 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항상 떠들석한 제주에 지난 18~20일 유독 시선을 모으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여기가 제주도 맞나? 억수로 좋다 아이가. 잘 좀 밀어다고"
 
휠체어를 탄 25명의 중증 지체장애인과 30여 명의 청각, 시각, 경증 지체장애인들, 그리고 13명의 봉사자들이 함께 한 제주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50여 명의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각각 20분 정도. 휠체어가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동 중에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 곳이 나오면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관광과 식사, 화장실 이용을 위해 하루에도 휠체어를 싣고 내리기를 십여 차례. 직접 버스에 오르거나 내리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일일히 업어서 승하차해야 한다. 힘겨운 이번 여행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제주도 장애인지원센터에서는 군부대의 도움을 얻어 해병대원들을 파견할 정도였다.
 
"가족 여행에도 저는 데려가지 않더군요.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게는 불편하고 힘든 존재일 수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애인 참가자 중 대부분은 제주 여행이 처음이다. 일단 혼자 힘으로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다. 대구 둥지교회(신경희목사 시무)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준비한 이번 제주도 여행에도 교인들의 절반 정도만이 함께 했다. 물론 참가한 교인들 다수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경비 일부를 교회로부터 지원받았지만 그래도 여행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부부가 모두 지체장애를 갖고 있어서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에 나섰다는 김재상집사 부부, 교회 내 공동체에서 알콜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과 만나 지난해 결혼한 지체장애인 정소영집사 부부, 장애인 시설에 있다가 6개월 전부터 독립생활을 시작한 조경원 청년, 기대와 설레임으로 이틀 간 밤잠을 설쳤다 유은희 씨 등 각기 다양한 여건과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중심에 교회를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교회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고, 배우자를 만난 곳이며, 매주일 예배와 교제를 통해 한 주를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희망에 거하라'를 표어로 2박 3일 간 진행된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얻은 희망은 바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둥지교회 이원일장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제주도 여행을 은혜 가운데 마쳤으니, 이제는 더 먼 곳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젊은 시절 부인과 함께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했다는 이 장로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세상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며, "이번 여행을 통해 교인, 교회, 봉사자들 모두가 연합을 통해 더 큰 비전을 품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봉사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이번 여행에서 경증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밀고, 음식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주는 등 섬기는 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냈다. 여행 참가자들은 "경증 장애인, 중증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서로를 형제처럼 아끼고 도와주는 모습이 바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아니겠냐"며, "모든 장애 교우들이 아름다운 가정과 일자리를 얻고, 교회에서 봉사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에는 이러한 섬김을 다짐하는 세족식이 진행됐다. 신경희목사와 이진익부목사가 교인들의 발을 씻기고, 이원일, 최덕일장로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목회자가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신의 발을 씻길 때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서로 포옹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날 말씀은 '모든 인간과 자연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각각 다른 방법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방법이 조금씩 틀리기는 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깨달음 속에 이들은 다시 하나님의 도구요, 섬기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또한 수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염원했다.


* 취재 뒷얘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함께 했으면"

   
지난 21일은 총회가 정한 장애인주일이었다. 올해도 총회는 전국교회에 자료집을 배포하고 교회들이 장애인주일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비장애인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인교회나 장애인부가 있는 교회에는 장애인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회에서는 장애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장애인주일이 교회에서 갖는 의미는 적을 수밖에 없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을 거듭하며 늘어나는 교세와 함께 연령, 성별, 직업 등으로 교인들을 분류하고 모임과 행사를 특성화해왔다. 어린이는 교회에 가면 어린이 예배를 드리고 어린이 담당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고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교제하다가 돌아간다. 청년들도,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부도 특수사역으로 구분되었다.
 
둥지교회 신경희목사는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도록 하셨는데 교회 마저도 인간의 눈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이번 여행의 참석자들 중에는 장애인들을 섬기며 늙은 할머니 집사님들도 여러명 있었다. 이들은 장애인은 아니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것은 장애인과 다르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청년들도 10여 명 있었고, 이 중에는 혼자 힘으로 경사로를 오를 수 있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가 휠체어를 밀어줘야만 이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들에게서 태어난 비장애 아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연합해 힘든 여행을 마치고 하나됨의 감격을 나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눈은 똑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서로를 섬길 수 있도록 다른 부분을 만드신 것 뿐이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양한 구분, 전문적인 교육, 무리 안에서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장애우들의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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