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영적 기관으로 존재

[ 선교 ] 민족 단결시킨 '러시아 정교회'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6월 17일(수) 13:57

박성원/WCC 실행위원ㆍ영남신대 교수

러시아정교회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면 988년 당시 왕자였던 블라디미르의 개종으로 기독교는 러시아의 국교로 지정됐는데 이후 정교회는 많은 역사적 고통을 담당하면서 분열과 전쟁 침략 등 역사적 고통 속에서 러시아민족을 지키고 단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몽골 등 외세 침략을 받을 때면 러시아를 모스크바 중심으로 결속하는데 정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17,8세기에 들어서 국가가 거듭된 변란을 겪을 때 러시아정교회는 유일한 영적 기관으로 존재하며 회복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정교회는 국가로부터도 많은 박해를 동시에 받아야 했다. 15세기 이후 그리스정교회로부터 분리 독립했으나 18세기 이르러 피터대제 집권 후 개혁과 친유럽 정책에 따라 총대주교(Patriarch)제 폐지와 홀리시노드(Holy Synod, 총회) 지도력이 장군과 평신도에게 돌아가는 등 위상이 격하되었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러시아정교회는 '존재하지 않는 교회(non-existent church)'로 전락했는데 비록 혁명 직전 총대주교제도는 복원했으나 교회를 사회주의의 적으로 간주하는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박해는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88년까지 러시아정교회로는 그야말로 '암흑기'를 보내야 했고, 혁명 직후 진행된 사원 파괴작업으로 방문 기간 중 찾아갔던 '구세주성당'도 훼파되었고 세르게에프 파사드의 7백년 역사의 본부 교회 역시 예배를 포기하고 박물관으로 활용하겠다며 양해를 얻어 파괴만은 면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주교 3명을 제외한 모든 사제는 투옥됐는데 하나님은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셔서 세계 제2차 대전후 스탈린이 남은 주교 3명과 러시아정교회 회복을 시도하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스탈린 사후 수면 하로 사라져버렸으며 후루시초프 이후에는 교회만 파괴할 뿐 인명의 희생은 사라지게 됐으나 무신론을 만연시켜 근본적 위협을 조성했다.

1988년 기나긴 박해가 끝나고 러시아정교회 설립 1천년 기념식을 거행했는데 당시 제네바에서 사역하며 이러한 변화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정부는 교회와 구체적 협력을 시작하면서 수도원을 반환하고,정치 사회적 변화 속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오늘날 러시아정교회는 △교구 1백57교구 △주교 2백3명 △수도원 8백4개 △교회 2만9천2백60개 △목회자 3만6백70명 △주일학교 1만1천51개의 교세를 갖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러시아연방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조지아를 제외한 발틱연안에 산재해 있는데 교회 구조는 주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지역협의회와 주교회의 그리고 6명의 선출직 주교와 동수의 선출직 평신도 대표로 구성된 홀리시노드 등 세 단계의 성직 계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에 대표단을 영접한 대외협력부는 1946년 설치되어 에큐메니칼 관계를 맡고 있으며, 연방 시절부터 대외 에큐메니칼 관계를 담당했는데 공산치하에서는 기능이 강화되면서 현 총대주교인 키릴이 대표로 있는 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정부의 외교부와 대화창구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대외협력부는 대표 아래 △기독교 공동체와의 관계 △정교회 간의 관계 △교회와 사회 △디아스포라 등의 부서로 구성돼 있는데 키릴 총대주교 체제 이후 대외협력부와는 별도로 △교회와 사회부(Department of Church and Society)와 △디아스포라부(Department of Diaspora)가 신설돼 상대적으로 대외협력부는 약화됐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러시아정교회는 과거에 비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결속력의 약화와 함께 종교적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의 약화, 자유시장주의의 유입으로 인한 청년들의 신앙과 도덕관 약화, 사회봉사 사역의 요구 증대, 이슬람 유대교 등 소수 종교와의 대화 문제 등이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번 만남에서 현안으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정교회의 최대 고민은 무엇보다 '개종운동'(proselytism)으로 표현되고 있는 개신교의 공격적 선교에 따른 문제라 할 수 있다. 정교회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고조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청년 선교나 사회봉사선교와 같은 협력선교의 틀을 모색할 필요가 있음이 재확인됐다. 이와 함께 동성애 등 도덕적 가치의 몰락에 대한 고민도 매우 깊었다. 최근 동성애를 인정한 스웨덴교회와 관계 단절 조치는 이런 심각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과거 러시아정교회 구역인 에스토니아정교회가 러시아정교회를 떠나 그리스정교회에 편입됨으로써 현재 양 교회간 관계가 '전쟁'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악화된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서구교회와 같이 러시아정교회 역시 사회개방으로 인해 청년들의 이탈 현상 역시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선교 전략에 몰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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