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신앙의 유산, 나누며 살아요"

[ 인터뷰 ] 순교자 안길선목사의 후손, 안철호장로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09년 06월 08일(월) 14:27
   
▲ 안길선목사의 순교비 앞에서 후손 안철호장로.
'1948년 월남해 그해부터 본교회 제2대 위임목사로 시무하던 중 1950년 8월 23일 오전 10시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납북되어 순교.' 신당중앙교회에 마련된 안길선목사 순교비에 기록된 내용이다. 평양신학 수료 후 신사참배 거부자로 지목돼 국내 여러교회를 전전하다가 중국 연변 용정으로 이주했고 광복을 맞이해 귀향한지 2년만이었다.

후손 안철호장로는 6월만 되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사실 불효죠.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자전거를 타고 심방을 다니시던 모습, 교회의 화합되지 못한 모습에 많이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 안양 나환자촌을 매주 방문해 돌보셨던 기억 등을 떠올리며 안 장로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했을만큼 아버님은 외골수 신앙을 고집하셨어요. 시험때는 수요예배에 안가고 공부를 했으면 싶었지만 택도 없었죠"라고 회고했다.

"어릴때부터 잡곡밥을 먹었기 때문에 건강해요." 그는 쌀밥은 언제나 손님차지였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아버님의 사망소식을 들었을때는 앞이 캄캄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울어봤습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아버지를 두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3번을 연이어 다시 돌아와야했다는 말을 전하며 안철호장로는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으셨어요. 아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순교신앙을 계승해온 그는 이제 받은 복을 나누며 살고 있다. 항공사진 촬영 및 제작을 담당하는 범아엔지니어링의 대표인 안철호장로는 "돈 한푼 없이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십분활용해 회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이제는 선두주자로서 자부심을 갖습니다"라며 앞으로 나라의 기술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지난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기독기업이 후원하는 핸드벨선교단을 창단했다. "미국에서 핸드벨을 연주하는 어린아이들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어요. 이런 것도 다 있나 싶어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선교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40년이 지나서야 그 꿈은 실현됐고 13년째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다. 모든 수익금은 거제도 소재 장애인복지시설인 애광원으로 보내진다.

또한 교회내 장학회를 통해 순교자 안길선목사의 이름으로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사역자들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서울대 교수직을 역임하며 인재양성에 힘써온만큼 장학생들에 대한 애틋함이 큰 까닭이다. 끝으로 안철호장로는 "아버님이 시무하셨던 신당중앙교회가 더욱 발전해 지역복음화를 위해 새로워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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