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살리는 '말'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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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03일(수) 14:03
나겸일/목사ㆍ주안교회

'폭력(暴力)'의 정의를 국어사전은 이렇게 밝힌다.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넓은 뜻으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이르기도 한다. 이렇듯, 폭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쉽게 갖게되는 의미는 유형력(형태를 띠고 있는 힘의 행세)의 행사로서 단지 신체적인 것으로 한정짓는다. 사실, 형법상 폭력의 정의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작금, 폭력은 또다른 변종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우리 안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사이버 폭력'이라는 것이다. '사이버폭력'은 넓게 "정보통신망을 통해 부호, 문언, 음향, 화상 등을 이용하여 타인의 명예 또는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파악될 수 있다. 그 중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으로 다가온 것이 일명 '악플'(^ 악성 리플)이라는 것이다.

악플은 "강렬한 감정과 정서의 적대적 표현"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유형으로는 개인의 취향, 젠더, 외모, 행동에 대한 적대적 느낌의 공격이라고 볼 수 있고, 신랄한 비꼼, 무례한 언사(욕설), 인신공격성 댓글이나 게시물들을 악플이라고 부른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악플의 위험성은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더욱이 인터넷이 보장하는 익명성의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기도 한다. 악플이 원인이 되어 실제 자살을 한 사람도 있고 악플로 인해 명예훼손, 왕따,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한 마디로 인터넷 악플은 타인을 헤치는 또다른 흉기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그 악플의 부작용을 인식하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반응으로 악플의 반대 개념인 선한 리플, 일명 선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선플달기 운동도 펼쳐지고 있고 국회 내에선 '선플정치모임'까지 태동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IT 강국 대한민국이 비로서 진정한 IT 선두 국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아 흐믓하다.
 우리 옛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것이 있다. 그만큼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 한 마디는 놀라운 파워를 담고 있다. 절망 속에 빠져있는 한 사람에게 악플과 같은 부정적인 말 한 마디는 그를 최악의 경우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는 한 사람에게 말 한 마디는 너무나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 순간 그가 어떤 말을 듣게 되는지 그것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슬픔 속에 있다하더라도 선플과 같은 희망적인 말 한 마디를 듣게 되면 그것이 그에게는 새로운 소망의 의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다시금 일어서게 만든 그 희망의 메시지는 세상에 허덕이는 또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소망의 메아리가 될 것이다. 당신의 말은 지금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안 그래도 힘든 이 시기에 우리의 말이 영혼을 살리는,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그것이 되길 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선플의 핵심 정신을 폴 트립이 쓴 '영혼을 살리는 말, 영혼을 죽이는 말'이라는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 말은 단순한 대화나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마음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 변화는 개인의 인격적 노력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오직 가능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말에 대한 유일한 모범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시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진실로 우리 자신의 말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도 세상을 향한 선플이 되길 바란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에머슨은 말하기를, "말도 행동이고 행동도 말의 일종이다"라고 했다. 행동은 분명 또 다른 언어이다.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 '바디 랭기지(body language)'도 있지 않은가! 어떤 경우엔 의미없는 백 마디의 말보다 진심어린 단 한번의 행동이 더 큰 효력을 나타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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