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십일조 정신으로 나아가자"

[ 특집 ] 세계개혁교회연맹 WARC 주최 '칼빈탄생 5백주년 기념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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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02일(화) 18:51

주제: '칼빈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과 오늘의 의미'
 일시ㆍ장소 : 2009년 5월 29일 ㆍ 스위스 제네바 칼빈 강당

- 김삼환 총회장 초청 강연 抄 -

   
▲ 사진 우측부터 통역을 맡은 금주섭목사(WCC 선교와 전도위원회 총무)와 김삼환총회장, 사회를 맡은 오필리아 오르테가 WCC 공동회장, 미국의 발제자로 나선 메리 뉴번 윌리엄스(PCUSA 존 칼빈노회 노회장).


칼빈 탄생 5백주년을 맞이하여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 마련한 이 귀한 자리에 초청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칼빈(Cal-vin)이 남긴 업적을 한국의 시각에서 이야기해 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자유(unlimited free-dom)가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시되던 20세기 말에는 엄격하고 완고하기로 소문난 칼빈의 가르침이 더 이상 현대사회에 먹혀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무한 자유를 시장에도, 과학기술에도, 사회가치에도, 정치에도 부여함으로써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위기, 생태위기, 사회위기에 직면한 21세기 초엽에 칼빈을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2월 에큐메니칼 센터를 방문한 미구엘 데스코토 브로크만(Miguel d’Escoto Brockmann) 유엔총회 의장이 "지금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위기, 즉 경제위기, 생태위기, 사회위기, 정치위기의 중심에는 영적 위기(spiritual crisis)가 있다."라고 했다. 동감한다. 지금 세계가 당면한 위기의 핵심은 바로 영적 위기(spiritual crisis)라는 데는 종교인이든 세속사회인이든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교회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과 참된 교회(authentic Church)의 정립을 위해 열정적으로 개혁운동을 했던 칼빈의 탄생 5백주년을 맞이한다는 자체가 이미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 나는 칼빈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 뒤 칼빈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향해 칼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을지를 상상해 보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칼빈이 한국에 남긴 것들 
 
제네바가 칼빈을 만난 것은 칼빈이 30대가 되었을 때이지만 한국이 칼빈을 만난 것은 칼빈이 탄생한지 거의 3백80여 년이나 지나서였다. 제네바는 칼빈을 직접 만났지만 한국은 칼빈을 제네바, 스코틀랜드, 미국 등 3개 대륙을 3세기에 걸쳐서 간접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 안에는 수많은 칼빈의 업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가? 먼저 단순하게 말하면 오늘 한국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회로 남아 있다. 한국에는 18세기에 로마 카톨릭교회가 들어왔고 1백년 뒤인 19세기 말에 개신교가 들어왔는데 장로교는 오늘 한국인구의 약 25%에 달하는 기독교신자 가운데서도 약 60% 이상을 차지하는 다수의 교회전통이 되었다. 한국은 장로교회의 자손이 번창한 곳이다. 

그러나 이것은 에큐메니칼 시각에서 볼 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장로교회 전통이 한국사회와 교회 안에서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정치'가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한국사회가 봉건사회로부터 수탈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가는 상황 속에서 한국에 소개되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사회가 개화되어야 하고 일제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줄 메시아적 출현을 갈망하고 있을 때였다. 

이 역사적 격변기에 찾아온 기독교 복음을 한국민족은 자연히 종교적 복음으로만이 아닌 민족을 구원할 복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기독교의 영향으로 정치도 봉건정치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고, 기독교의 평등사상으로 반상계급이 타파되고 여성이 해방되고 교회는 독립운동의 중요한 중심이 되는, 복음이 사회전반에 해방의 역사를 이루는 그런 경험을 한국교회는 특이하게 했다. 복음이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전통은 초창기보다는 많이 쇠퇴했지만 아직도 한국교회 안에는 상당한 의식으로 남아있고 때가 되면 나타난다. 

그러면 칼빈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로 칼빈이 한국교회에 끼친 업적은 한국교회를 성경중심의 교회(Bible-centered Church)로 만든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그 초창기부터 성경의 교회(Church of the Bible)였다. 특이한 것은 한국 안에서 교회공동체가 구성되기도 전에 먼저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최초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만주에서, 일본에서 먼저 성경이 번역되었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성경을 번역할 뿐만 아니라 이 성경을 아주 심층적으로 묵상했다. 한국교회가 하는 성경공부는 성경연구나 성경의 이해를 위한 공부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하는 성경공부의 목적은 성경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다. 성경공부를 통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living Word of God)과 우리의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living story of ours)가 만나는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속에서 체험하는 신앙전통이 한국교회의 성경공부의 핵심인데 이 성경공부운동은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서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둘째는 한국교회는 깊이 기도하는 교회(Prayer-centered Church)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기도는 그저 예전의식 속의 한 기도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기도는 생사를 건 기도다. 민족이 식민지로 전락하고 아무런 소망이 없을 때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와 같은 민족해방자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한국민족은 지금 좀 살만해졌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가난과 식민통치, 전쟁,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소수민족의 운명 등 수 많은 시련속에 살았다. 이런 종말론적 상황 속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밖에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교회의 기도전통은 종말론적 기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28년 전인 1980년 7월 6일 당시 서울 동쪽의 외진 동네 상가건물에서 약 20명과 함께 명성교회를 개척할 때 새벽기도를 하면서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기도의 전통이 오늘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셋째로 칼빈은 한국교회가 하나님 중심의 교회 (God-centered Church)가 되는데 기여했다. 한국교회는 장점만 가지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많은 약점도 가지고 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한국교회들은 인간 중심의 교회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나도 명성교회를 개척하는 날부터 '오직 주님'(The Lord Only)이란 슬로건으로 우리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데 이렇게 슬로건을 정하는 것도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한 이유다. 앞서 우리 교회가 새벽기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새벽기도의 목적도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하루의 첫 번째 시간을 하나님과 마주하고 기도하여 나의 삶의 체계를 하나님 중심으로 짜겠다는 헌신의 행위가 바로 이 새벽기도의 목적이다. 칼빈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란 시편 121편 1절로 예배를 시작했다는데 칼빈이 이렇게 예배를 시작한 것도 하나님이 모든 삶의 근거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지 않을까? 

넷째 칼빈이 한국교회에 남겨놓은 전통은 하나님의 경제사상이다. 칼빈은 헌금을 '돈의 신을 하나님 앞에 복종케 하는 예배의 행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은 개혁교회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교회는 이 신앙전통을 잘 생활화하고 있다. 한국교회 교인이 된다는 것은 주일예배에 반드시 참석하고 전도하고 그리고 십일조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교회가 재정적으로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자신의 생활비를 먼저 확보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자신의 생활을 돌본다. 교회를 건축할 경우 아무리 약한 교회라도 성도들이 건축을 위해 먼저 자립적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그 다음에 나머지 부분이 부족하면 외부의 도움을 요청한다. 

만약 한국교회가 경제적으로 강하다면 바로 이 강력한 십일조 정신과 한국교회의 자립정신 두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한국경제가 좋아져서가 아니다. 헌금은 신앙고백의 문제다. 

저는 앞으로 세계교회가 에큐메니칼 십일조 운동을 전개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에큐메니칼 기구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회원교회가 자기 교회가 쓰고 남는 것을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해 바칠 것이 아니라 에큐메니칼 운동 그 자체의 의미를 존중하여 먼저 바치는 에큐메니칼 십일조 정신이 고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섯 번째 칼빈이 한국교회에 남긴 업적은 가난한 자를 위한 봉사정신이다. 칼빈이 제네바에 모여든 난민들을 목회적으로 돌본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칼빈은 헌금을 4등분으로 나누어서 4분의 1은 목회를 위해, 4분의 1은 교회유지를 위해, 4분의 1은 교회 안의 가난한 자를 위해, 4분의 1은 교회 밖의 가난한 자를 위해 쓰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이 칼빈의 전통을 잘 배웠다. 한국교회는 그 스스로 뼈저린 가난을 체험했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정신은 남다르다. 1990년 초반부터 북한이 엄청난 식량난을 겪었을 때 한국교회는 거의 50년 동안 세뇌되어온 반공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가난한 동포를 돕는 일을 폭발적으로 전개했다. 1998년 한국이 경제위기를 맞이했을 때 한 통계에 보니까 교회의 수입은 30% 줄어 들었지만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교회가 나눈 것은 30% 증가했다고 한다. 

칼빈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연대하는 연대경제 (Economy of Solidarity)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가난한 자와 연대하는 것은 교회의 첫째 되는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를 향한 칼빈의 예언적 선포 
 
한편 21세기 이 세계가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칼빈을 다시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오늘의 경제위기 속에서 이 시대의 경제를 하나님의 나눔의 경제, 연대경제, 은총의 경제로 바꾸는데 우리는 칼빈이 필요하다.
둘째, 인간의 오만한 기술문명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영역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훼손하고 생명체계 전체를 뒤 흔드는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주권(Creation Sove-reignty)을 다시 선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모든 인간의 위기의 중심에는 영적 위기가 있음을 직시하고 이 영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 다시 인간의 문명을 하나님 중심의 문명, 영적 가치를 중심으로한 문명건설을 위해 칼빈이 필요하다.
넷째, 가난한 자를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돌보는 새로운 연대영성을 고양하기 위해 칼빈이 이 시대에 다시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오늘의 교회가 점점 인간이 중심이 되고, 복음의 증거가 아닌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NGO가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교회를 참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칼빈이 다시 21세기에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칼빈을 21세기에 초청할 수 있을까? 결국은 칼빈의 정신과 신학을 유산으로 부여받은 오늘의 개혁교회가 21세기의 칼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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