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젊은이는 환상을 볼 것이요

[ 특집 ] 5월 특집 청년아 일어나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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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12일(화) 19:52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면 청년의 시기는 새순이 돋고 꽃이 활짝 피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청년의 시기는 생명력이 넘치는 시기이다. 봄이 되면 농부는 가을의 추수를 기대하며 열심히 씨를 뿌리고 밭을 간다. 이와 같이 인생의 봄, 청년기 또한 인생의 결실을 꿈꾸면서 열심히 수고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도 있지만, 젊은 시절을 아무런 의미 없이 허무하게 보낸다면 인생의 큰 결실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의 시기에는 꿈을 꾸어야 한다. 비저너리(visionary)라는 말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몽상가'라는 뜻도 있고, '꿈꾸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꿈을 꾸어도 헛된 꿈을 꾸어 인생을 허비하는 몽상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참된 의미가 있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참된 의미가 있는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어야 한다.

창세기 37장에는 꿈을 꾸는 젊은 요셉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은 젊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다. 그리고 요셉 인생의 수많은 질곡 속에서 그 꿈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늘 진실하게 살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꿈은 결국에는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진 결과 이집트와 주변지역에 불어 닥친 기근의 상황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놀라운 결과를 이루게 되었다. 청년의 시절 한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고, 계속 그 꿈을 일구어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이런 인생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인 것이다.

그럼 우리 청년들은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비전은 무엇일까? 청년의 삶의 개인적, 가정적, 교회적, 사회와 역사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청년의 개인적인 차원의 비전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청년은 '부흥'을 꿈꾸는 청년이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흥'은 숫자적인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와 같았던 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나고, 영적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세상 속에서는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유일한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죄와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 될 것을 꿈꾸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의 향락과 퇴폐적인 문화에 휩쓸려 살아가면서 헛된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는 무기력하고, 소망없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그런 모습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만날 때에만 그들의 삶에 새로운 비전이 깃들고 참된 소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부흥을 경험한 청년이 될 때에만 이땅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를 알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년의 시기만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헌신하기에 적합한 시기는 없을 것이다. 성경과 교회의 역사에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인물들 중에는 이 시기에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발견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둘째, 가정적인 차원의 비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청년의 시기는 부모로부터 점점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청년들이 고민하는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이성교제와 결혼이라는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청년들이 깨어진 가정 속에서 자라나면서 많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므로 청년의 시기에 하나님을 만난 청년들은 과거의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받고 회복되는 것을 꿈꿔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회복되고 천국과 같은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가며 하나님 나라의 반석과 같은 가정들을 이 땅에 세워나가게 될 것이다.

셋째, 교회적인 차원의 비전이 있다. 청년 세대는 교회의 허리에 해당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허리가 약해지면 그 사람은 건강할 수 없다. 이처럼 교회의 허리인 청년들이 살아야 교회가 살 수 있다. 교회안의 청년들이 역동적으로 살아나서 교회를 섬김으로 위로는 교회의 요소 요소마다 교회를 떠받들고 섬기며, 아래로는 교회의 미래인 교회학교를 섬겨야 한다. 이렇게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하며, 청년부가 성장할 때 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임에도 청년부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교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보다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미래를 대비하는 교회라면, 청년들을 품고, 청년들에게 기대를 걸면서 청년부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역사적 차원의 비전이 있다. 청년들은 교회의 주축일 뿐 아니라, 사회의 주축이면서, 결국 우리 역사를 만들어가고 책임져야할 내일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대학, 청년의 시기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병의 시기이다. 그러나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청년의 시기에는 어떤 실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패를 거울삼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 회장이었던 빌 게이츠는 청년시절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하여 모두가 선호하는 하버드대학을 중퇴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따라 비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고 결국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하고 현재는 은퇴후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이웃을 돕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 크리스찬 청년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라와 민족 앞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하여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얼마든지 밝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청년의 시기는 도전의 시기, 일할 시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인물들이 청년의 시기에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에 도전했고 그로 인해 큰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을 보았다. 18세기의 위대한 설교가 조지 휘트필드는 22세부터 사역자가 되었고,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27세에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유명한 미국의 전도자 D.L 무디도 23세에 구두외판원의 사업을 버리고 전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다. 청년의 시절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 청년들을 하나님 나라의 기둥같은 일꾼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비저너리 청년부'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도 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며, 날마다 복음 안에서 부흥하고, 가정을 회복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꾼이 되며, 사회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는 청년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찬 청년들이 이런 꿈을 품고 새벽이슬같은 신선한 모습으로 헌신할 때 한국교회의 앞날은 더욱 소망이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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