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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정보미 기자 jbm@pckworld.com
2009년 05월 07일(목) 13:06

숫자로 종말을 예고하는가 하면(노잉), 신부가 흡혈귀가 되서 육욕을 탐닉한다(박쥐). 또 5백년 만에 부활한 일루미나티가 한 시간에 한 명씩 교황 후보를 살해한다(천사와악마).

최근 출시되고 있는 영화들을 살펴보면 기독교적 소재가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언뜻 봐서 기독교이지 그 속에는 무수한 허점들이 숨어있다. '아이로봇'을 연출한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노잉'. 태양의 온도 상승에 따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소멸한다는 종말론을 그린 이 영화는 한 소년이 50년 전에 묻혀진 타임캡슐 속에서 숫자가 빽빽히 적힌 종이를 발견한 뒤 MIT교수 아버지인 존(니콜라스 케이지)에게 건네주며 전개된다. 존은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지난 50년간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재앙을 예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고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속에서 숫자가 담고 있는 의미는 사건일, 사망자수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위치. 예언된 숫자에 따라 비행기 추락, 지하철 사고 등에 이어 결국 태양폭발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성경 속 종말론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멸망하고 두 사람만이 외계인에 의해 다른 행성에 옮겨지는 마지막 장면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마치 에덴동산의 선악과 나무처럼 보이는 아름드리 나무로 달려가며 새로운 구원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을 일부의 시각에서 처럼 천국에 입성하는 것으로 바라보기엔 억지스럽다. 이는 단지 영화의 감칠맛을 더하기 위한 SF적 영화 소재라고 밖엔 볼 수 없다.
 가톨릭 사제가 뱀파이어의 혈액을 수혈하며 흡혈귀가 된다는 영화 '박쥐' 또한 신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종교 영화로 보긴 힘들다. 신부 상현(송강호)은 병자들을 고치려는 목적으로 생체실험에 자원하며 아프리카로 떠나지만 5백여 명의 바이러스 실험 지원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뒤 성자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피 속에 끓는 뱀파이어의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의 부인 태주(김옥빈)와 간음, 살인 등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거듭한다. 결국 자신의 연인까지 뱀파이어로 만든 그는 피를 공급받기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는 태주와, 욕망 앞에 무릎꿇는 자신의 변형된 모습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영화 속 상현은 엄격한 가톨릭 환경에서 자란 박찬욱감독의 성장배경과 연관돼 있다. 성도들을 대상으로 고해성사를 해주거나 연약한 병자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도 포기하려 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설정만 보면 자칫 종교 영화로 오인할 수 있으나 상현은 욕망 앞에서 사제로서의 도덕적 위치를 상실하고 타락한 천사 루시퍼처럼 끊임없이 쾌락 만을 추구한다.
 또 하나의 영화, '다빈치코드' 댄브라운 원작의 '천사와 악마'는 5백년 만에 부활한 일루미나티(가톨릭 교회의 탄압으로 사라진 18세기 과학자들로 결성된 비밀결사대)가 교황 후보를 살해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톰 행크스)는 교황청으로부터 의문의 사건과 관련된 암호 해독을 의뢰받고, 새로운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고대의식)가 집행되기 전 납치된 4명의 교황 후보를 찾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일루미나티는 교황 후보들을 한 시간에 한 명씩 살해하고 마지막에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탈취한 반물질로 바티칸을 폭파시키겠다며 가톨릭 교회를 위협한다.
 지난 2006년 교계내에서 큰 논란을 가져왔던 영화 '다빈치코드'의 속편으로 불리는 '천사와악마'. 종교계의 이면을 파헤친 영화라 일컬어지는 이 영화에 대한 '제2의 다빈치코드' 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천사와악마'는 과학과 종교간의 깊은 골로 인한 가톨릭계를 향한 복수극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지적에 앞서 우리는 3년 전, '다빈치 코드'의 성급한 반대 운동으로 불러일으킨 '영화 홍보 극대화'라는 부작용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러한 류의 영화를 어떤 측면으로 볼 것인지 기독교인 수용자의 올바른 시각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기독교영화제 조직위원장 임성빈교수(장신대 기독교윤리학)는 우선 최근 종교성향의 영화가 다수 개봉되는 이유를 "관객들의 입맛에 맞춰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 세계에 부응하기 위한 특이한 소재를 찾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영화 '박쥐'의 경우 성스러운 것의 상징으로 신부를, 가장 육적인 것으로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이유는 인간들의 영적인 갈등과 욕망을 기성종교가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찾았다. 임 교수는 "이 때문에 상업문화가 종교적 소재를 다루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하고 있다"면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이해하며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책임감을 교회가 느끼고 기독교문화를 통해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회 문화재단 사무국장 최은호목사 또한 논란의 중심선상에 있는 영화들의 평가는 수용자들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음모론을 기반으로 하는 다빈치코드의 경우 서구사회 소속인들에게 익숙한 기독교 소재들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면서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대중들에게 어필할만한 소재가 있다면 종교성향 영화는 앞으로도 무수히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 목사는 단순한 오락영화에 지나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영화를 즐기되 픽션이 갖고 있는 허점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신학 및 기독교적 시각으로 문제점들을 바라보고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반기독교 영화에 교계가 일일히 반응하기 보다 그 노력 이상으로 좋은 영화 콘텐츠들을 발굴해 소개하자"고 권유했다.
 한 영화전문지에 따르면 '박쥐'를 촬영할 당시 천주교가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촬영지로 수도원 '헌팅'은 어려웠으나, 신부가 나서서 천주교 의식에 해당하는 부분을 직접 돕기도 했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외형적인 것보다 인간의 본성을 나타낸 이야기의 핵심을 제대로 간파한 것 같다"는 것이 이 영화 촬영감독의 전언이다. "창작은 창작이고, 종교는 종교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현 세대가 요청하는 기독교의 태도여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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