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돈옥이의 하루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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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30일(목) 11:55
우리 교회는 4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로 내년이면 50주년이 된다.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사역을 위해서 당회와 온 교회가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다.원래 예배당이 강릉 시내 오거리에 있었는데 원로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그곳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20년간 훌륭한 목회를 하셨다. 11년 전에 부임하고 보니 다른 것은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주차장이 없어 는 것은 나도 불편하고,나는 물론, 모든 교우들이 다 불편해 했다. 예배 시간마다 교통경찰의 사이렌 소리, 견인차들의 경적 소리가 없는 날이 없었다. 대로변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고, 불편한 주민들의 신고도 끊이지 않았다. 선견지명이 있으신 원로목사님과 당회가 경포 바닷가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예배당 신축 부지를 준비해 놓으셨다. 부임하면서 가장 시급한 주차장을 해결하기 위해서 건축부터 먼저 시작했다. 2년 여에 걸쳐 예배당 건축을 마치고 입당하니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예배 시간마다 몇 번 자동차 이동하라고 광고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앓든 이가 시원하게 빠졌다.

동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새 예배당으로 이사하고 난 후에, 아주 특별한 새 교인이 한명 생겼다. 이름은 최돈옥이다. 돈옥이네 집은 바로 교회 뒤편이다. 돈옥이는 네 살 때, 열차사고로 죽었다가 살아났기에 생각을 아주 조금밖에 못한다. 몇 년 전에는 휴지 줍는 트럭을 타고 다니며 일하다가 트럭에서 떨어지고 난 후로는 자동차를 아주 무서워하면서 집에서만 지냈다. 교회 사택에서 기르는 개들과 함께 뒹굴면서 놀았고, 다 허물어진 예비군 참호 속이 돈옥이의 유일한 아지트이다. 캄캄한 밤중에 참호 속에서 불쑥 나타나서 우리 성도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도 한다.

그런 돈옥이를 관리집사가 먹거리를 조금씩 챙겨주면서 정을 쌓아갔다. 그리고 이제, 돈옥이는 강릉교회의 상근직원(?)이 되었다. 월요일이면 목회자와 직원들과 똑같이 쉬고, 화요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을 한다. 출근해서 담임목사의 경건회 자리에 성경책을 가장 먼저 챙겨 놓는다. 그리고 부목사님들의 복장 검열을 한다. 넥타이를 매고 오지 않은 부목사들은 영락없이 돈옥이의 지적을 받는다. 내일부터 꼭 넥타이 매고 오라고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웅얼거리는 소리로 하는 잔소리(?)를 한참이나 들어야 한다. 돈옥이의 주 업무는 교회의 쓰레기통 비우기이다. 교회 구석구석 모든 쓰레기통은 가차 없이 돈옥이의 손에서 빈 통으로 변하다. 나는 항상 금요일이면 돈옥이를 불러서 목양실을 청소시킨다. 청소기를 돌리게도 하고, 밀대 걸레로 사무실을 바닥을 닦게도 한다. 물론 깨끗하게 청소할 리가 없지만 그래도 시킨다. 왜냐하면 돈옥이가 열심히 일하는 목적을 이뤄주기 위해서이다. 돈옥이의 목적은 청소가 아니라 청소를 마치면 받아 마시는 음료수에 있다. 청소를 하면서도 언제나 냉장고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 '오늘은 어떤 음료수를 주려나'.

처음 돈옥이가 사무실 경건회에 참여했을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의 향기(?)였다. 그래서 돈옥이에게 내린 매일의 숙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매일 아침에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출근하기, 둘째는 면도를 깨끗이 하기이다. 가끔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불호령(?)을 듣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깔끔한 마흔살 총각이다.

그 돈옥이는 나의 열성 팬이다. 오늘도 여전도회 모임 후에 식당에서 한 걸음에 달려와서 포옹을 하면서 내가 시작해야 자기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사를 무지 반긴다. 교회 어떤 식사 모임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성 교인이 바로 돈옥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날 동안 사람들로부터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으셨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겨우 마흔살 유치원생 '목사님 왕 팬, 돈옥이의 친구'이다. 언제 주님처럼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한번 들을 수 있을까? 오늘도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강릉 땅에서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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