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신애학(敬神愛學)의 삶

[ 한국 신학의 개척자들 ] <8> 박윤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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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29일(수) 15:14

이상규 / 고신대 교수ㆍ역사신학

박윤선은 단순한 이론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신학자가 아니라 그가 믿는 개혁주의적인 삶을 몸으로 체달했던 신학자였다. 그는 경신애학(敬神愛學)의 삶을 살았으며, 겸손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김명혁은 박윤선에 대해 말하면서, "한국교회 안에 칼빈주의 또는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개혁주의라기 보다는 근본주의 또는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박윤선은 "한국교회 안에 개혁주의 신앙이 무엇이며 개혁주의적 삶이 무엇인자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신 분이었다. 칼빈주의 신학은 하나의 신학체계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 뜨거운 신앙의 원리로 나타남을 보여 주셨고, 소극적 분리주의가 아니라 적극적 포용과 교제의 삶인 것을 보여 주셨으며, 세상사에 무관심한 반 문화주의가 아니라 사회문제와 구제사역 등에 적극적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변혁주의인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회상했다.

박윤선은 고신대학교(1946-1960), 총신대학교(1963~1980),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1980~1988)에서 학장으로 혹은 교수로 활동함으로서 그의 영향 하에 개혁주의 신학과 그 학맥은 위의 세 학교를 통해 체계적으로 계승되었고, 한국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비록 그가 직접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의 신학과 삶은 한국교회 전반에 수용되었다. 흔히 박형룡을 한국 보수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말하지만 영향력에 있어서 박윤선은 박형룡을 능가했다.

박형룡의 교의신학은 사변적 난해성 때문에 대중적 수용도가 낮았다. 그러나 주경신학자였던 박윤선의 저작들, 특히 성경주석은 일반 목회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읽혀졌다. 사실 그의 성경주석은 '학문적인' 동기에서 시도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강단이 메마르지 않도록" 설교자들을 돕기 위한 '실천적인' 동기에서 시도되었고, 그의 성경주석에는 41편의 소논문이 특주 혹은 참고자료로 포함되어 있다.

또 1천53편의 설교와 다양한 예화 등 '설교재료'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주석은 시골의 목회자로부터 도회지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독자층을 얻고 있었다. 한국목회자들의 서재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책이 박윤선의 주석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방대한 저술과 50여 년간의 신학교육, 그리고 목회 활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을 공표하고 가르치고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박형룡의 '교의신학'은 선언적 의미는 컸으나 수용성이 약했지만 박윤선의 저작, 특히 '성경주석'은 목회적 터전에 쉬 용해되고 착근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박형룡을 능가했다.

박윤선이 특히 강조했던 것은 성경 원전 혹은 원어에 대한 강조였다. 그는 번역성경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것이 강단을 개혁하고 한국교회를 쇄신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가 시도한 성경적 설교는 이전의 설교관행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박윤선은 한국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토대를 세우고 이를 석명한 인물이었다. 과거 평양신학교가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쳤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1931년 4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던 박윤선은 "이 신학교가 개혁주의 신학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는 명확하지 못했다. 나는 신학교 재학 중에 '칼빈주의'라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으며 교수들로부터 '성경신학'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점에 대해 하비 콘(Harvie Conn)도 의견을 같이 했다. 박윤선은 성경신학적 토대위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초석을 세우고 이를 광포한 인물이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그를 긍정하던가 그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가르침과 신학적 유산이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 목회와 설교, 그리고 교회적 삶의 행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 '교회의 교사'(doctor ecclesia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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