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슴 울리는 찬송, 분통 터지는 찬송

[ 특집 ] 4월 특집 / 한국 기독교 1백주년 이후 25년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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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29일(수) 15:05

손달익/서문교회 목사ㆍ찬송가공회 공동대책위원장

1905년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던 비탄의 시기에 스왈론 선교사(한국명 소안련)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이란 찬송시를 통해 당시 교회의 희망을 말했다.

(2절)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이 찬송가는 절망에 빠져있던 이 민족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의지를 부여하는 은혜와 감동을 교우들에게 선물했다. 이처럼 한국교회에서의 찬송가는 예배의 주된 내용으로만이 아니라 지치고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고 식어진 영성을 회복시키는 다양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지켜보면서 슬픔과 기쁨의 모든 현장에 교회와 함께 있어온 하나님의 선물이 찬송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은혜로운 선물인 찬송가가 한국교회 전체의 근심이 되고 갈등을 제공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잡고 심지어는 비리와 연관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는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에 직면해 있다. 특히 최근 약 25년 동안 한국교회의 찬송가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시련의 터널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체 한국교회의 근심으로 우리 앞에 있다.

하나의 찬송가를 향한 열망

1970년대의 연합집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는데 예배순서지의 찬송가 표기란에 '합, 개, 새' 등으로 장수를 표기한 복잡한 순서지였다. 이는 한국교회의 분열상과 미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교단 분열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합동측의 이탈로 교단 분열이 이루어진 이후 합동측은 1962년 '에큐메니칼 진영과 인연을 끊고 한국기독교 보수진영이 사용할 찬송가를 발행한다'는 명분으로 새찬송가를 발행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복잡한 찬송가 문제가 태동되게 된다. 이에 따라 우리 교단을 중심하여 기감, 기성, 기장 등의 교단들이 참여하여 1967년 6백 곡으로 구성된 개편 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합동 찬송가 개편 찬송가 새 찬송가 등이 동시에 사용되면서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 교회지도자들은 이를 하나의 찬송가로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 시작된 준비작업에서 99.8%의 교인들이 찬송가 통일을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작업은 탄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어 1976년 7월, 19개 교단장들이 모여 찬송가 합동 추진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최대의 관건은 합동측이 중심이 된 새 찬송가측의 합류 문제였다. 다행히 합동측 총회 역시 찬송가 통합 추진 위원회를 만들어 하나의 찬송가를 만드는 일에 참여키로 하고 양기구의 공동회의에서 한국 찬송가 통일 추진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그러나 그 후 합동측은 위원회 구성에서 위원수 배정을 두고 늘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위원회는 합동측의 요구 사항 대부분을 수용하여 1981년 한국 찬송가 공회를 구성하였고 1983년 한국 교회 백주년을 앞두고 하나의 찬송가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것이 종전까지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가 사용해 온 통일 찬송가이다.

하나의 찬송가를 만들어 한국교회의 일치를 이루어낸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배태되게 되었다. 곧 찬송가 공회를 구성하면서 합동측이 요구한 개편 찬송가 측과 새 찬송가 측의 1:1구성비원칙을 허용하여 이후 수익금의 배분에 있어서도 납득 못할 불균형을 초래한 점이다. 이와 동시에 통일 찬송가는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개편 찬송가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를 의식하여 통일 찬송가는 그 서문에서 '어떤 면에서는 완전치 못할지 모르나 그것은 찬송가를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인 것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는 궁색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찬송가는 하나의 찬송가를 염원했던 한국교회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어서 한국교회 전체가 즐겨 사용하는 말 그대로의 통일 찬송가가 되었다.

21세기 찬송가 발행과 이를 둘러싼 법적 시비들

통일 찬송가를 보완해야 한다는 필요성들이 제기되자 찬송가 공회는 새로운 찬송가 발행을 계획했다. 1997년부터 개발에 착수해 2001년에 새롭게 수록될 곡들에 대해 저작권 신청을 마치는 등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찬송가 발행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 찬송가를 처음에는 21세기 찬송가로 불렀다. 이 찬송가는 번역 찬송가가 대부분이었던 통일 찬송가와는 달리 한국인에 의해 작사 작곡된 곡들을 1백28곡이나 수록하여 이 부분에서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고 번역 가사들을 국어학자들의 정밀한 자문을 받아 가다듬어 우리말과 정서에 맞는 표현으로 수정 발전시킨 흔적들이 있는 등 통일 찬송가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 찬송가는 준비 완료된 상태에서 발행이 지지 부진하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공회의 공동대표직을 둘러싼 갈등과 특히 출판사들과의 출판 계약에서 비롯한 갈등과 법적 소송 등이 제기되면서 공회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는 상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교단들은 새로운 찬송가의 인준을 계속 연기시켰고 자연스럽게 발행도 여러 해 연기되다가 2006년 9월30일 전체 6백45곡으로 구성된 새로운 찬송가가 발행되어 전국교회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새 찬송가는 그 탄생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을 파생시켰다. 우선 1백억이 사용되었다는 개발비의 적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었고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실무진들의 효율적 업무 능력에 대한 시비로 이어졌다. 이런 내부의 경영문제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에서 출판권을 둘러싼 논쟁도 가열되었다.

원래 찬송가는 예장 출판사와 기독교서회가 독점 출판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성서원, 아가페, 두란노, 생명의 말씀사 등 일반 출판사들이 찬송가 출판시장에 가담하고 찬송가 공회가 이들 출판사와도 반제품 형태로 공급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새 찬송가가 출판되면서 이들 일반 출판사들은 그 동안의 기여도 등을 주장하면서 정식 출판권 계약을 요구했다. 이들은 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일반 출판사들이 부담해 온 과정을 근거로 출판권을 요구했고 찬송가공회측은 새 찬송가의 활발한 보급과 양질의 제작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출판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직ㆍ간접으로 밝히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독점 출판권을 지닌 예장 출판사와 기독교서회가 반발하면서 법정 시비로 이어져 교계 내부는 물론이고 출판업계를 비롯한 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이즈음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게 되는데 찬송가공회의 탈세의혹이었다. 1981년에 설립된 한국 찬송가공회가 연간 10억 원에 이르는 수입을 올리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교회개혁실천연대에 의해 국세청에 고발되었다. 이에 따라 세무당국은 70일 간의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8억5백만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 사건은 세금의 추징금액보다는 한국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관이 아무런 의식 없이 탈세를 해 왔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찬송가공회는 또 한 번 한국 교회 전체에 큰 불명예를 안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새 찬송가의 발행 시점을 전후해 벌어지자 과연 찬송가가 모든 성도들이 알고 있고 배우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와 성도들을 거룩한 백성되게 하는 본래의 순수한 의도에서 제작ㆍ발행되는 것인지 아니면 공회와 출판사의 이익을 고려한 영업행위인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새 찬송가에 대한 정서적 거부로 나타났고 각 교단 총회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회들의 사용이 활발치 못한 보급부진이라는 연쇄작용을 낳게 되었다. 가슴을 울려야 할 찬송가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찬송가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크게 증폭되는 현상은 그래서 더욱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찬송가공회의 법인화 문제

새 찬송가의 발행에 즈음한 여러 문제들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찬송가 공회는 공회의 법인화를 추진했다.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집행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대표적 연합기관이 아직도 임의단체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점 자체가 각종 오해의 씨앗이 되고 불투명과 불합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근거로 찬송가공회의 개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고 법인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회의 노력에 대해서 가맹 교단장들이 적극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법인화 작업은 난관에 처하게 된다. 교단장들은 이런 법인화가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된다는 점, 찬송가공회가 소수 인사들이 독점하는 사유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주무관청인 서울시와 정부의 관련부처에 반대의사를 정식으로 전달했고 서울시는 법인 등록을 반려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공회측의 전권을 위임 받은 인사들이 전격적으로 충청남도 도청에 법인등록을 하였고 이에 따른 교단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 지난해 총회를 앞두고 한국교회 찬송가공회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여러차례의 진통을 겪은 후 우리 교단 대표들의 대안제시를 받아들여 '법인 자체는 인정하되 그 내용은 한국교회 전체의 요구를 수용하자'는 취지의 합의안 도출에 성공했다.

그 합의안은 다음과 같다. 1. 총무 2인의 즉시 사퇴, 2. 이사들은 전원 교단 총회에서 파송된 이사들로 한다. 3. 일반회계 감사를 실시한다. 4. 정관의 내용들은 공대위의 요구를 공회가 수용하여 개정한다. 5. 위 사항들이 수용되지 못할 시는 각종 소송을 제기한다. 6. 공대위는 존속한다. 이와 같은 합의안은 즉시 한국 찬송가 공회에 제출되었고 우리 교단은 합의 내용을 전제로 지난 총회에서 찬송가공회의 법인화를 추인했다.

아직도 이 문제가 매듭되지 못하여 계속 시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찬송가공회의 정상화와 찬송가의 본래 권위 회복은 전적으로 찬송가 공회에 달려 있다. 공회는 그간의 경영문제, 과다한 경비 지불 의혹, 세금 탈루,  법인화 과정의 불투명성 등의 문제들이 한국교회를 크게 근심하게 했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획기적 개혁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즉시 실시해야 한다.  분통터지는 찬송이 아닌 영혼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송을 모든 한국교회 성도들이 소리 높이 부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찬송은 예배 시에도 일상생활에도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성도들이 찾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찬송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이런 한국 교회 성도들의 순전한 찬송가 사랑에 찬송가 공회가 책임 있게 응답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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