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가득한 목회를 위해'

[ 디아스포라리포트 ] 디아스포라 리포트 '영국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편… <3>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23일(목) 09:42

   
▲ 이혼과 재혼이 보편화된 이곳에서, 나의 아버님보다 나이 많은 신랑을 주례한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있는 신랑, 신부, 등록인 그리고 본인.

짧은 나의 목회 소견으로서도 분명히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바로 한국 교회의 목회 열정이다. 과거 한국에서 목회할 때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일단 상(喪)이 나면 한밤중에라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임종예배를 드리러 가곤 했다. 졸린 눈으로 야밤에 어찌 운전이나 제대로 했나 싶다. 대략 평균 1년에 50장(葬) 정도 치러, 거의 매주 유가족을 조문하고 위로했으니 목회자로서는 비록 육신은 고달프나 참으로 보람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장례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친김에 이곳 사정도 좀 들어보자. 어찌 보면 여기서는 장의사(under-taker)들이 한국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수고를 상당 부분 덜어주고 있다. 장의사는 한마디로 유가족을 대신해 모든 것을 처리한다. 우선 상이 나면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고 집례할 목회자에게 일정 등을 확인해 유가족과의 상의를 거쳐 장례 절차를 준비한다. 한국처럼 3일장으로 끝내야 하는 시간적 부담이 없어, 목회자도 유가족도 여유를 갖고 장례를 준비할 수 있다. 슬픔과 애통으로 가득한 장례식 분위기야 동서고금을 막론해 여일반일 것이다. 허나 한국인으로서 당혹스러운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다. 상가에서는 결코 웃음을 보이지 말라는 것. 주님의 위로, 부활과 천국의 소망을 전하되 웃음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허나 이곳에서 장례예배 도중에 종종 유가족 대표가 나와서 고인에 대한 추억을 말하는데, 대부분이 고인과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 특별히 어처구니 없었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내용들이어서 조객들의 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필자도 이곳에서 제법 꽤 장례를 집례했지만 여전히 조심스럽다. 장례예배 전 유가족 대표와 반드시 인터뷰를 한다. 우선은 고인에 대한 제반 사항을 파악해 나름대로 짤막한 고인의 전기를 만든다. 고인이 좋아했던 찬송에서부터 성경구절, 음식, 자라온 환경, 가족사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양식란에 실례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유가족이 원하는만큼 기재하도록 부탁을 드린다. 이를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도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고인이라 할지라도 그 분의 삶에 대해 보다 친밀하게 또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장례 이야기를 했으니 결혼 이야기가 빠지면 서운하리라 싶어 잠시 언급하자면, 한국에서의 결혼 예식과 그리 차이는 없다 하겠다. 다만 한국에서의 결혼은, 마치 '결혼식을 해 치운다'는 느낌을 결혼 당사자나 하객 모두가 공감하지 않나 싶다. 식장은 어수선하고 하객들은 얼굴 도장과 축의금 전달로써 품앗이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다음 번 자신의 차례 때 되받을 기대에 안도한다. 예식에 늦는 것은 보통이고 앞에서 주례하시는 목사님의 말씀과 신랑, 신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바라는 것은 배부른 욕심이다. 허나 이곳은 철저히 신랑, 신부 그리고 가족 중심의 예식이 차분하게 진행된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이러한 예식을 드렸으나 지금은 고약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싶어 안타까기만 하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곳도 이혼, 재혼이 워낙 보편화됐기 때문인지, 결혼 30, 40주년 기념예배를 마치 본인들의 결혼식을 다시 하는 것처럼 똑같이 성대하게 치른다. 비록 어감이 어색한 면이 있지만 이들은 이를 '혼약갱신'(Renewal of Vows)이라고 부른다. 이혼 후 새로운 사람과 결혼해 신혼여행 가는 것이나, 지금껏 함께한 반쪽과 남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다를 게 없지만, 오히려 더 의미가 있다 싶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우리의 돌 대신, 여기서는 아이가 유아세례(christening)를 받을 때 온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축하하고 즐거워한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목회자가 교우들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전제할 때, 보람되고 행복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대부분이 노령화된 영국 교회에는 혼자 외롭게 집을 지키고 계신 독거노인들이 많다. 영국 목회자들은 비교적 심방에 대해 적잖은 부담을 갖고 있다. 일단 받는 쪽도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방 날짜도 여유있게 잡아야 한다. 심방을 가서도 15분 정도만 머무르곤 한다.

영국 목회자들에 비해 모든 것이 어눌하고 부족한 필자는 기타 하나 성경 한 권 들고 정기적으로 이들을 찾는다. 다윗이 찬송을 통해 악신을 물리친 것처럼, 찬송을 통해 영혼과 심령이 맑아지기를 소원하면서 말이다. 두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할 때 영국인들이 결코 보여주지 않는, 가슴에서 흐느끼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환경과 사람은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만지시는 주님은 같은 분이시고 그 사랑 역시 동일함을 확신하게 된다.

목회의 70%는 말이지만 결국 목회를 온 100%로 만드는 것은 결국 주님의 사랑(compassion)이다. 말보다 사랑이 가득한 목회를 위해 오늘도 나의 14년 된 늙은 말 '로시난테'에 시동을 건다. '목회일념'.


진 영 종
빌스톤ㆍ파크회중교회 목사
총회 파송 영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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