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니'

[ 땅끝에서온편지 ] < 5 > 베드로마을과 디베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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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2일(목) 10:00

   
▲ 지난 2005년 창립 10주년 및 추수감사절을 맞아 예배드리는 디베랴교회 교우들의 모습.

러시아 수난과 부활절기에 문안을 전합니다.

언젠가 러시아 빠스하(부활절)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아침에는 진눈깨비가, 오후에는 함박눈이 쏟아졌었다. 오전에 유서 깊은 가톨릭 성당에서 디베랴교회 등 러시아 개신교회들이 각 층마다 마련된 장소에서 예수 부활을 축하하는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개신교 부활절이 러시아 정교회와 대체로 한주간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크리스토스 바스크레스(그리스도 부활)!'라고 인사를 하면 상대방은 '아직 고난 중'이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어로 '베드로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레닌이 통치하던 시절의 감옥이었던 '뾰드르 파블로스카야(베드로 바울 요새)'도, 그 유명한 피터 대제도 베드로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언젠가 네바강 동편에서 그물로 잡은 고기들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어부들이 많은데 훗날 그들이 변화된 모습을 생각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은 디베랴 바닷가를 연상하며, 디베랴교회 베드로전도사가 잡은 모래무지와 비슷한 코류슈카라는 생선을 맛있게 구워먹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변화된 베드로를 통해 사도행전 교회가 열린 것처럼 러시아에도 주님의 역사가 재현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1995년 4월, 러시아 부활절에 디베랴교회는 우리 가정에서 개척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2~3주 후 경찰이 찾아오고, 수갑을 보여주며 세 가지 큰 죄(신고 없이 교회를 개척한 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 점, 목사 비자 없이 학생비자로 목회활동을 한 점)를 지어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협박성 경고를 해왔다. 통역자를 비롯해 아무도 변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회심하기 전인 대학시절, 시위를 주동한 죄목으로 유치장에 갇힌 경험이 있었던지라 비교적 담담하게 이 일을 받아들였다. 허나 두려운 것은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러시아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선배들의 충고와 도움없이 교회를 시작하다가 바로 쫓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에 지나도록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10)

그후 한 두해를 지나며 디베랴교회는 부흥의 때를 맞기도 했다. 동역하는 선교사들이 세운 안디옥교회와 믿음교회와 더불어 미르선교회 및 미르한인교회, 미르고려교회 창립의 모판이 되었다. 하지만 긍휼교회를 개척하고 원치 않게 새날교회와 분립되기도 하는 등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으며 모진 시련의 시간들을 지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수많은 주님의 사역자를 양육하기도 했다. 러시아 남쪽 크라스노다르스크 지역의 안드레이목사, 알렉세이전도사, 시카고의 저명한 마르크목사, 쿠바의 베드로목사, 긍휼교회의 로자전도사. 임마누엘교회의 최크림목사, 미르고려교회의 안토니나전도사 가정, 효드르와 안나집사 부부 등 귀한 사역자들이 거쳐갔고 다시 새로운 사역자들이 찾아왔다. 이런 일들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회복을 체험하게 되었고 부흥을 사모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 126)
한편 힘든 시기를 겪은 여성 교우들도 있다. 힐러리를 연상케하는 지성과 분위기를 지닌 마리나는 남편을 잃었고, 올가집사도 아들(바샤)을 잃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남편이 도망가버린 엘류사 엄마 , 딸을 낳은 후 남편은 행방불명되고 아들마저 마약 판매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스베타집사 등 교회 뿐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시련은 계속되었다.

"…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시 84:6).
그러던 어느날 왜이리 디베랴교회에 굴곡이 많은지 주님의 뜻을 구하며 예배를 드린 후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른 동역자가 섬기는 교회가 차고 넘치도록 진실히 간구하고 복을 빌어라."
이 음성을 듣고 러시아의 부흥을 구한다면서도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부흥에만 집착하는 연약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로 다가왔다.
"적은 수가 모일지라도 감사하고 살아 있는 임재를 구하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전 15:53~54)

인생에는 예측하지 못한 작은 일이 커다란 슬픔과 아픔을 초래하고, 때로는 예비된 사명의 은총으로 연결된다. 다시금 숱한 분들의 기도와 동역에 감사드리며 거룩한 사랑의 열정과 성령으로 타오르길 기원한다.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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