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하나님 나라의 실천운동

[ 특집 ] 특집기획 / 독일의 경험에서 배우는 '통일' (完)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으로부터 듣는 통일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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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19일(목) 09:58

   
▲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한 몰트만교수는 통일운동은 기독교인들이 당연히 꿈꾸어야 할 하나님나라의 실천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이 공급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해야 하며 세상이 모르는 가치를 전하고 실천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은 튀빙엔대학교 신학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들과 토론하는 몰트만교수.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연구과제로서 수행된 '사회통합 관점에서 본 통일:삶의 단절로서 통일과 재사회화' 연구의 2년차 정점은 독일방문이었다. 통독 후 19년, 지금 독일은 하나의 사회로 내적인 통합을 이루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동안의 학술 및 민간단체 간의 교류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독일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

정치적 통일은 이루었지만 통일의 궁극적 목표인 사회적 통합은 아직 달성되지 않은 것이다. 통일국가가 사회통합에 다다르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민간의 화해와 일치의 문제였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ㆍ문화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점과 관련해 우리의 연구주제인 '사회통합과 교회의 역할'은 독일통일에서 교회가 감당했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는 점을 밝힌 것이었고, 통일이후에도 계속 필요했던 그 역할이 간과되거나, 축소 내지는 소멸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독일의 개신교회는 분단 40년간 파트너 관계를 통해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감당해 왔다. 그러나 통일 후 20년 동안은 이 '화해와 일치'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 정당한 평가를 받았어야 했고 또한 장려되었어야 했다.

통일이 되었으니 이제 '화해와 일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섣부른 판단이 문제였다. 특별히 동독교회의 역할은 강조되었어야 했다. 라이프치히의 평화기도회와 촛불시위를 한 때의 과제라고 생각했던 동독교회의 실수였다. 진정한 통일운동은 통일이후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독일의 교회는 간과했던 것이다. 우리 연구팀의 일정은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의 크뤠트케(Krotke)교수로부터 튀빙엔대학교의 몰트만(Moltmann)교수로 이어지는 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는데, 여정의 막바지에서 만난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 1964)의 저자답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튀빙엔대학교 신학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몰트만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였다. "교회가 통일 후 통합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통일의 비주도국 사람들을 주도국의 체제에 적응하도록 만드는데 교회가 힘을 써야 한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적응과정을 교회가 돕는다고 하면 그것이 독일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통일 이후에 동독사람들은 전에는 당에서 지시하는 대로 살면 됐었는데 그 이후에는 시장경제에 적응하느라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그는 말하면서, 한국에서도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것을 돕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교회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그는 교회가 일자리 없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교회는 시장경제가 줄 수 있는 것과 다른 것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미문에 앉은 보행장애 걸인'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내가 주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것'이라고 말한 확신과 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결국 가치체계의 문제로 집중되었다. 몰트만은 한국이 통일이 된다면 북한을 중심으로 남한을 병합할 것인지(사회주의식), 남한이 북한을 병합하던지(자본주의식) 아니면 제3의 길로 가던지 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지금의 민주주의의 의미는 평등과 자유와 박애인데, 지금 현 상황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은 평등은 있지만 자유가 없고, 서구에서는 자유는 있지만 평등은 없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그래서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어떻게 하든 자유와 평등을 균형 있게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이때에 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별히 현재의 경제위기는 국가가 경제파탄을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이러한 비인간적인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국가는 좀더 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현재의 교회가 중요한 과제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시장경제(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이 교회 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특별한 가치를 소유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예를 들어 실업자나 노숙자, 아이가 많은 가정 등등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해서 교회는 '디아코니쉬'(diakonisch, 봉사)적이어야 하고, 그리고 사회의 여론을 향해서는 '이런 식의 비사회적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비판과 각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프로페티쉬'(prophetisch, 예언)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점은 하노버의 로쿰 수도원에서 만난 독일개신교협의회 사회연구소(Sozialinstitut der EKD)의 소장 베그너(Wegner)교수가 통일시대의 가치체계로서 제안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soziali-stische Marktwirtschaft)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이미 1948년 암스테르담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는 '책임적 사회'(verantwortliche- Gesellschaft)의 다른 한 이름일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를 무조건 백안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면서, "우리는 동독하면-북한도 비슷할 것 같은데-막시즘이니 공산주의니 또는 이데올로기로만 가득 차고 쓸 만한 것은 없다고 경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하지만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 시스템의 긍정적 측면, 예를 들어 동독시절에 10명 중 6명이 유치원에 다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서독은 그에 반해 10명 중 2명뿐 이었다. 나는 이런 사회복지 시스템은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수용되어 계속적으로 시행되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도 통일이 된다면 주의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은 옳고 우리는 전적으로 틀렸구나"라는 감정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까지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경시된다는 기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자신들의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더 힘든 경우는 여성들일 것이다. 통일 이후에 임신중절수술 비율이 동독 쪽에서 많이 증가했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전에는 국가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일을 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동독의 여성들에게는 커다란 쇼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 세계적인 노학자의 실제적인 염려였다.

몰트만은 우리가 이번 방문 내내 들어온 '상대방을 세우는 통일정책이 통합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증언을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교회가 해야 할 원래적인 선교적 사명은 믿음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도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김일성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정치적인 메시아주의는 바뀌어야할 것이다. 그것은 북한 인민들의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에 김일성과 같은 존재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북한 사람들은 '아, 이제 나는 혼자구나. 아버지가 없어졌다.'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그들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진정한 버팀목으로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그들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한다면, 더 이상 김일성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이같은 해방적 사건은 기독교 복음과 복음의 선교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장이니 예장이니 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통해서는 이루어 질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우상들을 떨쳐낼 수 있는 복음을 통해서만이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런 복음이 북한의 공산당에게는 아주 위험한 것은 당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몰트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과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말로 그의 교회론과 선교학을 요약하면서 독일의 상황을 보고 통일을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서 통일을 기피하거나, 통일이 되면 경제특구를 만들어서 그들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자는 말들도 있지만, 통일운동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당연히 꿈꾸어야 할 하나님나라의 실천운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했다.

교회의 역할은 세상이 공급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다. 세상은 스스로 복음을 알지 못한다. 교회는 이 세상이 모르는 가치를 전하는 곳이다. 그리고 실천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퍼뜨리는 곳이다. 몰트만은 지금도 통일운동의 노상에서 서성대는 우리에게 '희망의 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통일에 희망을 갖자!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예언하자!

우리 한국교회가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통일운동'을 지속해 나갈 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이 범 성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 연구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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