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서 오는가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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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26일(목) 13:50

정성훈 / 동래중앙교회 목사

어느덧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소생했는가, 살아났는가를 무엇으로 식별할 수 있는가? 가장 쉬운 방법은 '눈을 떴는가?' 여부일 것이다. 봄을 '눈을 뜨는 계절'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눈을 떠서 봐야만 진정한 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 없으면 '봄'이 없다. 전자의 '봄'은 눈으로 보는 '봄'을 의미하고, 후자의 '봄'은 계절을 나타내는 '봄'이다. 봄은 원래 본다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봄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생명의 현상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시냇가 버들강아지가 눈뜨는 것을 볼 때 어찌 봄의 위력을 예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약동하는 봄을 기쁘게 맞이하고 봄이 주는 유익을 마음껏 누리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잘 보아야 한다. 우리의 눈이 닫혀있거나, 흐려져 있거나, 어두워져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봄을 체험할 수가 없을뿐더러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할 수가 없으리라. 영적 소경이 되어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인생이 어디 있으랴.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다.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주님은 보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보면서 사는 삶이 진정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불행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볼 것을 못보고 지나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육신의 눈은 가지고 있어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안과 공포에 떨며 지내는 것이 아닌가.

주님은 보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우리말로 바꾸면 눈이 보배라는 말이다. 눈이 보배인 사람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희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보는 것을 보는 자가 왜 복이 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보는 것을 보고 살아갈 때 희망을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절망 중에 있더라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보는 자는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여덟 번 다시 일어설 수가 있다. 봄이 주는 가장 위대한 메시지가 있다. 겨울은 지나갔다는 것이다. 더 이상 엄동설한의 고난은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희망의 봄이 찾아올 것이다. 이성부 시인이 쓴 '봄'이라는 시가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 마저 잃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우리는 봄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보며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반드시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 중에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라는 노래가 있다. 표면은 얼음장으로 뒤덮여 있어도 그 밑으로는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절망의 차디찬 얼음장 밑으로 하나님의 소망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보는 눈이 복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는 것을 통해서 미래의 꿈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항상 미래를 현실로 보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유명한 비즈니스 연구소에서 1백 명의 성공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다. "회사를 운영하거나 사업을 성공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중 80명 이상이 '비전'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비전을 일순위로 꼽은 것이다. 무슨 말인가? 미래를 보는 자가 결국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전을 가지고 앞을 내다보며 과감히 투자하고 도전하는 자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져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상황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 라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비전을 좇아 나아갈 때 위대한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보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는 눈이 있을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봐야하고, 오랫동안 봐야하고, 끝까지 봐야하는 분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주님을 보는 눈이 없으면 아무리 믿음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나의 노력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이 눈뜨는 이 봄의 계절에 우리의 영안이 열려져 자신을 계시하시는 주님을 보며 봄의 향연을 만끽하지 않으려는가. 이보다 더 위대한 축복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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