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독 지성의 대표주자

[ 한국 신학의 개척자들 ] <6> 채필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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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26일(목) 13:43

이진구 / 호신대 초빙교수ㆍ종교학

채필근이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1920년대와 3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서구와 일본을 통해 새로운 지적 사조가 밀려들어 오면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사회주의, 유물론, 무신론 등으로 대표되는 세속 이데올로기들은 과학적 합리성을 내세우면서 종교적 세계관을 위협하였는데, 특히 반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띤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를 공격하는 이러한 지적 도전에 대해 기독교계는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해야 했는데, 당시 기독교 지성을 대표하는 채필근은 종교와 과학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 이러한 도전에 답하고자 였다.

이러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채필근이 선택한 전략은 종교와 과학의 이분법이다. 그는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별하면서 양자의 공존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과학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신체'를 위하여 주신 선물이고 종교는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주신 선물이다. 종교 언어와 과학 언어를 이처럼 날카롭게 구별하는 이분법은 지금까지도 학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에 따르면 과학은 물리적 하늘(sky)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종교는 하늘나라(heaven)에 관심을 갖는다.

과학이 암석의 연대(the age of rocks)에 관심을 갖는다면 기독교는 만세반석(the Rock of Ages)이신 그리스도에 관심을 갖는다. 채필근의 사고 속에서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있는 자리가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필근은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를 비판하거나 종교의 자리에서 과학을 비판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를 방기한 월권행위로 간주한다.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채필근은 이와 유사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성에 근거하여 전개되는 철학과 신앙에 근거한 신학은 충돌하지 않는다. 신앙과 이성이 서로를 필요로 하듯이 신학과 철학은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채필근은 신학, 철학, 과학이 지닌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면서 세 영역의 유기적 보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과학은 물질적 생활에 필요하고 철학은 정신적 생활에 필요하고 신학은 신앙적 생활에 필요하다.

그는 진리가 오직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이 진리를 과학에서 물질적으로 실용하고 나는 이 진리를 철학에서 정신적으로 인식하고 나는 이 진리를 신학에서 종교적으로 신앙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과학은 내 생활의 피부와 같으며 철학은 내 생활의 근육과 같으며 종교는 내 생활의 골격과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몸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피부와 근육과 골격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우리의 몸은 존재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과학과 철학과 신학이 모두 필요하다. 과학이 없으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궁핍을 면치 못할 것이며 철학과 신학이 없으면 우리의 정신적 영적 생활은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신학과 철학과 과학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상호존중하면서 서로를 보완할 때 풍요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채필근의 말은 지금도 매우 유효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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