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시작이 부흥의 첫 걸음

[ 디아스포라리포트 ]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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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18일(수) 09:55

미전도종족을 향한 선교라는 것은 아직 복음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종족들을 향한 선교인데 풀러신학교의 박기호교수는 "미전도종족이라는 말보다는 미접촉전도 지역이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교회가 미전도 종족 선교에 참여한 것은 1994년부터이다. 내가 1988년도에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을 때 우리 청년들 20여 명을 데리고-그 중 절반 이상이 이곳 캐나다에서 태어난 2세들로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한국에 나간 것이 선교여행의 처음이었다. 그 아이들이 한국에 가서 모두 변화를 받고 왔는데, 그 동기가 수련회가 끝나고 하게 된 '거지 순례 전도팀'에 참여하면서 였다.
 
그 다음부터 소위 단기 선교 팀이라는 것이 시작되게 되었고, 가까운 멕시코부터 시작해서 단기선교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 교회의 교인 숫자가 늘어나고 목장이 1백40여 개로 늘어나면서 대륙별 선교를 시작했다. 현재 1천64개 가정으로 6가정이 모이면 하나의 가정 교회를 이루어 선교사역을 맡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선교에 온 가정이 동참하도록 한 것은 우리 교회 교인이 4,50여 명 정도 모였을 당시부터였다.
 
교회가 전적으로 선교에 헌신하기 시작 했을 때 하나님께서 부흥이라는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담임목사가 직접 선교의 현장에 뛰어들어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전도하지 않으면 교인들도 전도하지 않는다. 아직도 선교의 흉내만 내는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흉내를 내는 것 만으로도 기뻐하시는 것 같다. 우리교회도 그 동안 약 1백배의 축복을 받았다. 중앙아시아 선교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교회 개척을 제일 우선으로 하고 현지인 지도자들을 후원하면서 까작 종족을 제일 처음 입양했다. 현지 까작인 청년 네 명을 7년 동안 길렀더니 그들이 모두 목사가 되어 5백명에서 1천명 정도의 목회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후원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매년 선교 부흥회를 한 두차례 열어서 선교의식을 고취시키고 'Faith Offering(1년동안 사역을 하기 위한 선교 작정 헌금)'을 작정하고 선교 사역의 정보를 제공하며 단기 선교 훈련도 그 때부터 시작을 한다.
 
북한지역은 지금까지 수십 차례 단기 선교로 다녀 왔는데 미국과 다른 장점은 캐나다와 북한이 수교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을 다녀오기가 더 쉽다는 것이 동기가 되었다. 북한은 구제 사역부터 했다. 잘 아시다시피 공산권이나 회교권은 구제사역이 아니면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황해북도 황주군 흑교리에 있는 육아원과 탁아소를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육아원은 우리말로 하면 고아원이다. 그래서 사리원으로 사역이 확장되면서 사리원 육아원과 평양근교의 초등학교까지 라면을 공급해 주고 있다. 이것은 지난 7~8년 전 홍콩에서 만들어 놓고 철수한 라면공장(즉석국수)을 인수하여 매일 4만 개의 라면을 만들어 내면서 시작된 사역이다. 이것으로 사리원에 있는 육아원의 아이들과 황주군에 있는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 하신 것처럼,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인 것을 확신하고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어김없이 모든 필요를 기적같이 채워주셨다. 이런 일들이 시작되고 우리 팀들이 들어가면서 젖염소 보내기운동이 시작되었다. 현재 북한 전역에는 수많은 젖염소와 오리가 길러지고 있는데 젖염소 한 마리까지는 사유재산으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친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 우리가 추진했던 것은 옥수수를 보내는 일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는데 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막기 위하여 US 달러로 3백만불 정도를 교인들이 헌금해 주셨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그 사역을 하는 동안에 교인들 중 안경점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북한을 따라 왔다가 안경이 거의 전무한 것을 발견하고는 수소문하여 LA에서 안경점 하시는 어떤 장로께서 3천 개의 안경을 기증해 주셔서 전달해 준 일도 있다.
 
그후 평양에 안경점을 조사해 보니 4개 밖에 없고 그것도 사정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그래서 안경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MOM선교회를 통해서 'Kings Pharamacy'의 미국장로들과 연결되어 두 차례에 걸쳐 80만 개의 안경을 북한에 가져다 줄 수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과 제일 가깝다는 조선 영화사 감독 가족들로부터 시작된 안경 사역은 김일성 종합대학의 석사 박사과정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료로 이 안경을 쓸 수 있게 해 주었고 간접적이지만 복음의 밭을 기경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다.
 
이 안경 사역은 끝없이 확산 되면서 평양에 있는 6백 명의 안경 기술자들에게, 처음으로 들어간 컴퓨터 검안기 사용법 등 기술 전수를 위해 2박 3일씩 합숙을 하면서 그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런 만남과 접촉 그 자체가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주의 사랑과 빛을 전하는 사역이 된 것이다.

임 현 수
토론토 큰빛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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