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5천만 국민이 사랑하는 구세군 '자선냄비'

[ 교계 ] 작년 모금 33억 돌파, 국민에게 친숙한 기부문화로 자리

정보미 기자 jbm@pckworld.com
2009년 01월 13일(화) 16:57

매년 12월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듯 어김없이 거리를 찾아오는 빨간 냄비가 있다. 신기하게도 이 냄비는 주머니를 열어 한푼 두푼 넣고 싶은 조건반사를 일으킨다. 언제부터일까. 누구는 갓 태어나 거리를 처음 나왔을때부터, 혹자에게는 할아버지때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기묘한 현상일 것이다.

이 시대의 한 트렌드가 되어버린 구세군대한본영(사령관:전광표)의 자선냄비. 실무책임자 백승렬사관에게 자선냄비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쯤 될 것 같냐고 물었다.

   
▲ 구세군대한본영 자선냄비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백승렬사관.
"아마 금액으로 환산할 수는 없을겁니다. 대한민국에서 12월 하면 무조건 자선냄비입니다. 그만큼 값을 매기기는 어려울 거예요. 교계에서 내놓은 최고의 브랜드 아닐까요?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구세군' 하면 '자선냄비'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정도니까요."

1928년 국내에 처음으로 들어온 자선냄비는 일반 양철 솥을 나무 삼각대에 걸어놓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당시 서울 20개 지역에서 모금행사가 최초로 열렸는데 8백12원이 걷혔다. 백 사관은 "지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금으로 서울 시내 거의 모든 걸인들에게 죽을 쑤어 대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했듯 자선냄비의 모습도 세련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색 물감으로 도색한 빨간냄비가 탄생했고, 자원봉사자들도 구세군 제복에서 편리성과 보온성을 높인 빨간색 점퍼를 입게 됐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는 멘트도 행여나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해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내용의 각양각색 구호가 등장했다.

모금 방법도 다양해지고 젊어졌다. 한국도로공사의 협력을 받아 톨게이트에는 구간이용비를 지불하고 남은 동전을 기부할 수 있도록 대형저금통이 설치됐고, 전화로 참여하는 ARS 모금이 도입됐다. 지하철역에서는 티머니(T-money) 카드로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게 됐으며, 최근에는 기업과 함께 문자나 메일 등으로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자선냄비도 등장했다.

작년 12월 SK텔레콤과는 '**939(구세군)'를 누른 후 네이트(NATE)에 접속해 참여하는 '따뜻한 이웃사랑, 사랑온도를 높여라' 행사가 24일까지 진행됐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과는 빨간냄비 아이콘을 클릭해 메일을 보내면 10원, 카페에 리본을 달면 1천원이 기부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1986년 1억7천만 원을 모금한 자선냄비 기금도 점점 증가해 91년에는 5억, 95년에는 10억을 돌파했다. 2001년에는 전년보다 무려 5억 원이나 증액한 22억이 걷혔다. 그리고 2006년 30억 원 대에 무난히 입문, 자선냄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고유가에 증시폭락으로 유난히 경기침체가 심했던 지난 연말에도 전국 75개 지역 2백15개 냄비에서 32억 목표를 무난히 달성한 33억2천36만5천1백47원이 모금됐다.

   
▲ 1928년 최초의 자선냄비 모금행사 모습. /사진제공 구세군
자선냄비를 향한 사랑의 손길은 지난 80년간 멈출줄을 몰랐다. 왜 이토록 사람들은 지름 30.5㎝의 빨간냄비에 열광하는 것일까?

백 사관은 그 이유를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찾았다. 거창한 기부가 아니라 푼돈으로, 또 거리에서 손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자선냄비의 큰 매력점인 것이다. 또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12월이 되면 찾아오는 신의가 있고, "내가 기부한 돈은 반드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인다"는 공신력이 있다.

자선냄비는 화폐 단위의 집합소와도 같다. 집계를 위해 뚜껑을 열면 십원부터 만원까지 다양한 금액이 담겨있다. 또 상품권, 반지, 헌혈증서도 있다.

"간혹가다 밥먹은 영수증을 넣는 등 장난치는 분들도 있지만, 수고한다 감사하다는 소중한 편지들도 있죠."

한 번은 이런일도 있었다며 백 사관이 입을 열었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서울 대림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꼬박 3년을 매일 같이 찾아와 자선냄비에 후원금을 넣고 가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하도 궁금해 그 이유를 물으니 출근하기 위해 그 시간에 집을 나서는데 자선냄비에 넣으려고 천원을 준비해 온다는 것이었다.

"저녁 늦게 출근한다는 것도 그렇고 옷차림을 봐도 잘사는 형편으로 보이지 않았죠. 자선냄비는 이러한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아지는 것입니다."

지난해, 경제가 어려워 걱정했지만 냄비 뚜껑을 열고 목표액을 초과한 것을 보고난 뒤 백 사관은 "이것이 우리나라의 국민성이로구나" 깨달았다. 어려운 형편에도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나누는 마음 씀씀이가 불꽃이 되어 자선냄비를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모아진 금액은 1년간 각종 복지관, 장애우시설, 노숙인 쉼터, 지역아동센터, 무료급식소 등 1백99개 기관의 운영기금으로 쓰인다. 또 수해나 재해가 발생했을시 긴급자금으로 지원된다. 지난 2007년 서해안 원유유출 사고 당시에도 피해 주민들을 돕고자 무료급식차를 끌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중국에 이어 몽골에도 구제물품을 보내기 시작했다. 올해는 몽골에 무료급식센터 및 아동센터를 설립해 해외 지역민 구제에도 나설 계획이다. 알콜중독자 재소자를 위한 상담시설과 에이즈(AIDS)예방 사업도 진행중이다.

"미국 구세군의 경우 재소자를 일정기관 훈련시켜 사회에 적응토록하는 재활기관을 법무부 협력으로 진행하고 있죠. 이러한 선진국들의 사회사업 시스템을 직접 가서 배우고 옵니다. '레드리본'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는 에이즈 예방 사업도 '에이즈'란 단어가 생소했던 90년대 초부터 진행해왔죠."

주먹구구식이 아닌 끊임없는 교육과 공부를 통해 모든 사업을 진행한다. 때문에 어느 지역에 피해가 발생하면 해당지역 구세군교회서 상황을 파악해 본부에 알리고 자체적으로도 도울 수 있는 방편을 찾아 바로 지원에 돌입한다. '신속성', 이것이 구세군 사회사업의 가장 큰 힘이다.

백 사관은 자선냄비를 '수레'라고 표현했다. 그는 "주는 것을 실어서 소외된 곳에 전하는 것"이라면서 "자선냄비는 5천만 국민들이 어려운 사람을 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통로"라고 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큰 가마솥에 강냉이죽을 끓여 굶주림에 지친 동네 사람들을 먹여살렸던 구세군교회. 어려운 이웃들이 더욱 생각나는 세밑, 자신이 베푼 작은 선행이 큰 사랑이 되어 마땅한 곳에 쓰여지는 것이 바로 우리가 12월이 되면 자선냄비를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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