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교회

[ 디아스포라리포트 ] '스웨덴 임마누엘교회'편 5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8년 12월 29일(월) 17:26
   
▲ 구역 예배를 마친 후 함께 한 임마누엘교회 교인들의 모습.

 
며칠 전 기독공보 홈페이지인 'pckworld.com'에서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닙니다'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해외에 오랜 시간 살다 보니 '나그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다. 총회가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 이주여성에 대해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워크숍을 개최한 것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이제는 한국 교회가 이민을 보낸 자의 입장이 아닌 이민을 받은 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에서 총회 파송 선교사로서 이민목회를 잠깐 하다 선교사 훈련을 받기 위해 조국을 방문했을 때,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학생과 숙소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나?'라는 질문을 했고, 그는 자신의 경험 두 가지를 말해 주었다. 첫 번째는 어느 주일 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숙사로 돌아 오는데, 그 날 따라 날씨가 굉장히 추웠다고 한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야 하기에 빈 택시가 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면 가까이 와서 차를 세울 듯 하더니 자신을 보고는 그냥 휙 지나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몇 번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자 하는 수 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기숙사로 돌아 왔다고 한다. 두 번째는 지하철을 탔을 때 한 자리가 비어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 출구 쪽으로 나가기에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가 보다 생각하는데 지하철이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도 내리지 않았다. 그 때 그는 '내가 흑인이라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을 기억한다.
 
나 역시 이민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 않다. 누구든 조국을 떠나 타 문화권으로 가게 되면, 그것이 제1세계의 나라인 경우는 더하겠지만, 차별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하기 어렵다. 내가 살고 있는 스웨덴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민자에 대하여 열린 사회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민자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일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고, 동일한 말을 주고 받아도 이민자라는 자기 정체성으로 인하여 다시 한번 새겨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선교사 훈련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함께 일하던 스웨덴 목사님이 나를 찾아 와서 훈련 기간 중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주말에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쓰라며 얼마의 현금을 주었다. 그것이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부담스러웠던 나는 그 돈을 쓸 때마다 영수증을 받아 모았다. 그 당시만 해도(약 15년 전) 한국은 영수증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기에 매번 영수증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때로는 종이에 써달라고 해서 그 모든 영수증과 남은 얼마의 돈을 교회 재정 담당자에게 돌려 주었다. 그랬더니 스웨덴 목사님이 내 사무실을 세 번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지.
 
이민사회에 있어 교회는 이민자들의 상한 마음을 품어 주어야 하는 곳이다. 이민자는 문화의 장벽, 언어의 장벽 등으로 인해 마음이 상처 입고, 닫혀진 그래서 답답함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감은 상실하게 되고, 스트레스가 소리 없이 찾아와 그 마음에 쌓인다. 어디에서 이렇게 가슴 속에 쌓인 것을 속 시원하게 풀 수 있겠는가? 그 곳은 교회 밖에 없다. 교회는 어쩌면 그들의 막힌 마음의 장벽을 믿음으로 허무는 곳이요, 위로 받는 곳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소망과 용기를 공급받는 곳이다. 흔히 중국 사람은 어디를 가든 먼저 식당을 세울 생각을 하고, 일본 사람은 사업을 계획하고, 우리 한국 사람은 어디를 가든 교회를 세울 생각부터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 이민자들에게 있어 교회는 그들을 위한 절대적 공간임에는 틀림 없다. 우리 교회에서는 구역예배를 드릴 때면 먼저 예배를 드린 후 식사를 함께 나누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한식을 나눈다.) 이 때 여자교인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다. 도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러면 남자교인들은 가야 할 시간이라고 재촉하는데, 나는 그 때 '좀 기다리자'고 말한다. 지금 저렇게 하지 않으면 어둡고 긴 겨울을 보내기 힘들어 마음의 병이 생기니 마음껏 이야기하라고 한다. 그 시간만큼은 어떤 차별도 느끼지 않고 마음을 열고 자기의 아픈 이민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이기에 정신적으로 꼭 필요한 시간들이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스웨덴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11월이 되면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이 긴 겨울의 어두움이기 때문이다.
 
어느 공동체보다 다양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다양성의 공동체, 이런 공동체를 위해 이민목회를 하는 많은 분들은 스스로 말한다. '이민목회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그렇다. 교인들의 가슴에 맺힌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 이민목회이기에, 목회자는 자신의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길이 없기에 더욱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때로 이런 생각을 한다. '곁에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역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조 충 일
스웨덴 임마누엘교회 목사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