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피어난 공학도의 꿈

[ 인터뷰 ]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권세진교수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08년 12월 17일(수) 17:25

   
▲ 권세진교수(한국과학기술원).
올해 한국인 최초 우주인이 탄생했다고 떠들썩했던 국내 언론과는 대조적으로 러시아 우주국에서는 그를 국제우주정거장 방문객으로 표현하면서 우리나라의 현 주소에 기쁨 속 씁쓸하던 차, 낭보가 들려왔다. 지난 11월 28일 권세진교수(한국과학기술원)가 국내 최초로 달 착륙선 엔진을 실제 작동해 보이는 데 성공, 우리나라 우주과학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이번 실험에는 로켓 엔진에 주로 쓰이는 액체 연료를 대신해 엔진제조공정을 절반으로 단축해 제작비와 제작 기간을 줄일 수 있는 과산화수소수가 사용됐다. 독성이 적고 효율도 높지만 폭발 위험성이 높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2003년 제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연이은 '고난'. 권 교수에게는 낯설은 단어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보통 힘든 일을 당하면 '왜 나에게(Why me)?'라고 반문하지만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두 돌이 되기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을 채 극복하기도 전에 그를 돌보던 할머니마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형과 누나의 집을 전전해야 했고 때로는 혼자 살기도 했다. "우연히 친구들 손에 이끌려 교회에 처음 나가 맨 바닥에 앉아 찬양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는 그는 이후 누가 이끌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교회를 찾았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지독한 외로움에 철길을 따라 3~40분씩 걸어서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갔다.

   
▲ 순수 국내 기술로 최초 개발된  '달 착륙선 엔진'.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소망은 '평범함'이었다. 가정을 꾸리고 "세상이 공평하다면 어려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으니 이제는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던 그에게 청천병력이 들려왔다. 두 아들이 선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진단이었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엄청난 분노를 애써 잠재우고 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다. 그러나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1998년 첫째 용하를 잃었다.  권 교수는 "그 절망과 분노로부터 외면적인 정상을 회복하는 데 5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겨우 회복될 즈음 실험실 사고가 발생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앞에 그는 서서히 "왜 나에게?"라는 질문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저를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깊은 고난에 깊은 은혜가 찾아왔다. 이를 나누고자 권 교수는 내년 1월 '민지'라는 아이를 입양할 계획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소임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교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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