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세상] 예수원 노동학교 기자 생생 체험기

[ 아름다운세상 ] 공동체 생활속에서 이룬 진정한 코이노니아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8월 07일(목) 00:00

   
 
지난 7월 31일, 예수원 노동학교 3기 참가자들이 노동을 마친 기쁨을 점프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 정보미기자
 
【강원도 태백=정보미】 "댕- 댕- 댕-."
 오전 6시, 정오, 오후 6시. 예수원처럼 삼수령목장에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종이 울린다. 성부 성자 성령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시간. 삼종이 울리면 일제히 가던 발걸음을 멈춘다. 식사를 준비하느라 주방에서 들리던 분주한 소음도 잦아든다. 재잘거리던 수다와 웃음소리도 그친다. 종 한 번에 종달새가 "뾰로롱" 지저귀고, 종 두 번에 바람에 스친 자작나무 잎이 "쏴아-" 시원한 음색을 낸다.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한 시간, 그렇게 2분간은 세상 시름 걱정 모두 잊고 종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몸을 맡긴 채 하나님과의 일대일 대화를 즐긴다. 이 시간만큼은 현재의 고민거리도 닥쳐올 미래의 두려움도 전혀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오직 창조주와 피조물의 진솔한 대화가 이어질 뿐이다. 마음속에 여유와 평안이 가득 차오름을 느낄 즈음, 현실로 되돌아온다.

어디서부터 말을 풀어가야 할까.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 마음 속 가득 품고 온 것들이 크고 강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게 된다.

지난 7월 28일부터 1일까지 4박 5일간 강원도 태백 예수원 삼수령목장에서 진행되는 노동학교에 참가했다. 노동학교는 올해로 3년째, 매년 이맘때쯤 '북한 개방의 때를 준비한다'는 명목 하에 진행되고 있다.

   
 
 

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해발 1천1백m 고지에 위치한 삼수령목장에서 매일 오전 7시부터 네 다섯 시간 노동을 한 뒤 오후에는 조립식 건물 내에서 총 일곱 번의 강의를 들으며 주경야독(晝耕夜讀)했다. 정오에는 나라의 대소사부터 시작해 공동체 식구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대도'가 광범위한 주제로 20여 분간 진행됐고, 하루 세 번씩 밥과 참(간식)을 번갈아 먹었다. 틈틈이 조별모임을 갖고, 저녁에는 찬양과 뜨거운 기도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함께 모여 교제하는 '코이노니아' 시간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이번 노동학교엔 각지에서 모여든 총 15명의 인원이 참석했는데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란 이름으로 한 조에 5명씩 편성됐다. 남녀노소 저마다 각각 다른 이유로 북한에 대한 마음을 품고 왔다. 북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알고 싶어서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 중에 응답을 받고 왔다는 이도 있었다. 첫날 밤, 모닥불에 둘러 앉아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비전을 나누던 우리는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프로그램에 잔뜩 기대를 안고 텐트로 돌아가 억지로 눈꺼풀을 끌어 내렸다.

둘째 날부터 진행된 노동시간에는 뗄 감으로 쓸 수 있도록 나무를 길이에 맞게 재단하고, 삼수령목장에서 키우는 42마리의 소를 먹일 만큼의 풀을 벴다. 또한 축사를 정비하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사료 값을 줄이기 위해 산등성이에 올라 나무를 베고 가치를 치며 소들이 마음껏 풀을 뜯을 수 있도록 초지를 만들어 나갔다. 작업에 직접 참여하며 비 오듯 땀이 쏟아진다는 표현을 몸소 체험했다.

   
 
 

그렇게 흘린 땀은 사회에서 받았던 각종 스트레스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주었고, 때마다 적절히 살랑거리며 불어온 바람은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혔다. 처음 해보는 중노동에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쉬는 시간엔 서로에게 먼저 마실 물을 권했고 배달돼온 참을 먹으며 고된 노동 후에만 맛볼 수 있는 값진 기쁨을 함께 누렸다.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깨달은 '공동체의 삶' 이었다.

노동학교에는 특별한 손님이 초대된다. 새터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삼수령목장의 동역일꾼으로 섬기고 있는 최요한목사는 남한에 와서 주눅이 든 새터민들이 노동시간이 되면 남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자신감을 회복해 간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일했던 새터민 요셉 형제는 목재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참석자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한 셋째 날 저녁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서는 촛불을 들면서 왜 북측의 굶주리는 우리 민족을 위해선 들지 않느냐"는 그의 간증은 참석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단순하면서도 단조로운 듯한 이 시간표 속에서 기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점점 가슴 한 켠에 북한 동포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동학교는 바로 이것, 공동체 생활 속에서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이루고 북한선교에 대한 소명을 심어주기 위해 매년 이곳에서 변함없이 열리고 있는 것이리라.

오후 강의에는 삼수령연수원 원장 벤 토레이 신부와 최요한목사, 고무송목사(한국교회인물연구소 소장, 본보 전 사장), 전강수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예수원 회원 권요셉형제 등이 강사로 나서 예수원 삼수령목장에서 추진하고 있는 '네 번째 강 계획'에 대해 강의했다. 벤 토레이 신부는 네 번째 강 계획을 이렇게 설명했다.

"삼수령은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세 강줄기의 근원입니다. 이 근원지인 삼수령목장에서 이제는 네 번째 강이 '생명의 강'으로 흘러 백두대간을 통해 북으로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예수원 노동학교는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공동체의 삶'을 깨닫게 해주었다. 예수원 노동학교 3기 참가자 및 도우미로 나선 일꾼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정보미기자
 

그는 북한이 곧 개방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곳에 정착했다. 때문에 '기도는 노동이요, 노동은 기도'라는 예수원의 정신에 따라 육체적 노동훈련과 북한의 이해를 돕는 강의를 열며 개방의 때를 준비하기 위한 노동학교를 2006년부터 진행해 왔다.

그는 약 50만㎡의 삼수령목장 내에 '네 번째 강' 계획을 구체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연구센터 및 학교를 약 20만㎡로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해뜨는 마을, 공동체 마을, 무지개 초지, 독립주택 등 총 4개의 단지를 구성하는데 예산만도 2백억 원이 드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곳에서 북한 전문가들의 연구 및 학회를 병행하고 청소년들의 글로벌스쿨을 건립해 북한이 개방될 때를 준비하겠다는 포부다.

D. L. 무디와 함께 미국의 성령운동을 주도한 R. A. 토레이 1세에 이어 미국장로교 선교사 토레이 2세, 예수원 설립자인 토레이 3세(고 대천덕신부)로 이어져 내려온 선교의 결실이 이제 4세 벤 토레이 신부에 의해 북한 선교의 길이 물꼬를 트려 하고 있었다. 4세가 진행하는 네 번째 강 계획, 숫자부터 의미심장하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예수원 식구들에게 잘가라는 손짓과 함께 "할렐루야"라는 축복의 인사를 받았다. 4박 5일간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진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단순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마음이 아니라 북한이 개방될 때 공동체로서 함께 사역할 동역자의 마음이 되어 내려올 수 있었다. 그것은 가벼운 발걸음이라기보단 양 발에 모래주머니가 채워진 듯 '거룩한 부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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