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교육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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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 23일(수) 00:00

강 대 운
목사ㆍ고성교회


양육적 의미의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과 행정적 의미의 '사역(Ministry)'이 담겨져 있는 목회(牧會)는 '교인으로 하여금 영적 힘을 함양케 하여 예수공동체의 바람직한 일원으로서, 교회 안팎에서 필요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파송하며 계속해서 보살피는 거룩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이 거룩한 몸부림의 첫 번째가 바로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가르치지 않은 것 보다 더 큰 죄는 없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죄보다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영과 육은 물론 후일 그 자녀까지 유기(遺棄)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단 한 번밖에 없는 극히 짧은 삶을 통해 영원한 구원을 알았기에 우리 자신이 좋은 나무여야 하며(마7:17), 극상품 묘목인 후진들에게 들포도를 맺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사5:2).
 
교육이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인즉 동양의 현인 맹자(孟子)도 후진을 교육하는 것은 삼락(三樂) 중 하나로, 천하의 왕노릇하는 것도 여기에 들지 못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준 신비한 능력, 곧 잠재력(Talent)을 끄집어내어 계발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사람이 바로 교육자이면서 목회자다. 그리고 이 역할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직분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하며, 함부로 내려놓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 천직(天職)을 받은 목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자, 곧 교육목회자이어야 한다. 본래 구약의 제사장 '코헨'은 신약의 '랍비'와 '파테르'로 그 맥이 교육행위를 포함한 의미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도 최고의 교육자를 미칭(美稱)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스승'이다. 본래 제사장을 뜻하는 '숫웅'이라는 말에서 나온 스승은 그야말로 재와 덕을 겸한 자로,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쳤던 큰 사람(Master)이었다. 잘못된 지도자를 엄히 꾸중하며, 미래를 생각해 오늘 한 그루의 생명을 심는 큰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누구든 자신의 자녀를 잘 가르쳐주는 사람을 존경하고 감사해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성인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던 어린 아이들을 어른의 품 위에 올려놓고,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자는 비참하게 죽어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8:6). 반면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라 했다(단12:3).
 
교육은 감동을 기대한 준비된 만남이다. 물론 이 만남을 가질 자들은 서로가 불완전하다. 그러기에진실을 가슴에 품고 정성을 손에 쥐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한다. 그랬을 때 교육자와 학습자는 서로에게 보람과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져진 아름다운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소리가 높은지 오래다. 이러한 위기감은 우선 교회학교 학생 수의 감소현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어이없게도 신앙의 대잇기조차도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후일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로 씨앗을 뿌려야 하며 묘목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시126:5).
 
교회마다 나름대로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특별히 주일학교와 중ㆍ고등부, 청년대학부 교육의 특성화를 지향해야 한다. 예배만큼이나 교육적 부분을 강조하여 체계적으로 나가면 한국교회에는 다시 거룩한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육목회자로서의 의식전환과 꾸준한 자기 연수가 시급하다. 학습자의 질은 교육자의 그것을 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교육에 관심을 가진 목회자의 모골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값으로 이 땅에 교회를 짓게 하셨고, 거기에 이미 선언하신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가치적 목적을 두게 하셨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알알이 모둠이 있어야 하고,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을 염두한 배움이 계속돼야 한다. 알 것을 깨닫게 하고, 받아 누릴 것을 챙겨서 새로운 피조물로 나서게 해야 하는 것이 한국교회 교육의 중요한 실제라는 것이다.
 
결국 교회가 그 주인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자녀를 바람직하게 다듬어 예수공동체를 구해내고 발전시킬 건장한 하늘용사로 챙겨냈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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