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리포트] 멜본한인교회 편1

[ 디아스포라리포트 ]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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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26일(목) 00:00

   
 
 
주 현 신
멜본한인교회 목사

멜본한인교회는 호주의 첫 한인교회로 오는 7월 8일에 창립 35주년을 맞습니다. 그날은 저희 부부 결혼 19주년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담임목사 결혼기념일과 교회창립기념일이 같다는 것, 심상치 않은 일이지요. 하기야 교회는 주님의 신부라 했으니 교회창립기념일도 일종의 결혼기념일이겠지요. 하필 그날 북방선교현장 방문단이 출발하는데, 우리교회가 영적 물적 에너지를 쏟아온 북한의 사역지 등을 돌아보며 섬기며 배울 예정입니다. 이번 방문은 그래서 결혼기념여행인가 봅니다. 올해는 제가 이 여행길에 따라나서지 않는데도 여느 때보다 더 가슴 설레는군요.
 
결혼기념일이 교회창립기념일과 같다는 이유로 제가 이 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은 아닐 테지요. 더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 쯤 이곳으로 유학을 왔는데 어쩌다 멜본한인교회에서 첫 담임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어쩌다 이 머나먼 남쪽 나라에 붙들려 이민목회를 하게 되었을까? 요즘 같은 초겨울이면 더 쓸쓸히 조국을 그리워하지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 '어쩌다'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일이 아닌가 라는 의혹(?)이 짙어집니다.
 
60년대 중반 저의 부모님은 낯선 부산 땅에서 몹시 힘겨운 나날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6ㆍ25 때 홀로 월남하여 학도병으로 참전한 아버지였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치듯 결혼한 어머니였기에, 가진 것도 기댈 곳도 없는 신세였지요. 시장바닥과 뒷골목을 헤매던 중에 어쩌다 마주친 분들이 매혜란 매혜영(Helen & Catherine Mackenzie) 자매 선교사입니다. 이분들은 호주 장로교 파송 선교사였는데, 부산지역에서 '나환자의 아버지'라 불리던 매견시(James Mackenzie) 목사의 따님들로, 당시 자신들이 설립한 일신기독병원에서 의료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어쩌다 만난 가난한 젊은이에게 병원 일용직 일자리를 주었고, 호주 교회가 보내온 물품들로 생계에 도움을 주었고, 부산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하고 지원해주었지요. 그때 부산신학교 교장도 호주인 선교사 서두화(Alan Stuart) 목사였습니다. 아버지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은 분들, 정말 고마운 믿음의 은인들이시지요. 그 후 아버지는 장신대를 거쳐 목사안수를 받고 어쩌다 가게 된 안양에서 오래 목회하셨고 은퇴하셨지요. 그 아들도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되더니 어쩌다 호주 멜본으로 유학 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호주로 공부하러 간다니까 아버지가 수십 년 소식이 끊겼던 세 분 이름을 적어주며 혹시 살아계실지도 모르니 찾아보라 하셨습니다. 멜본한인교회에서 첫 주일예배를 드린 날 놀랍게도, 세 분 모두 멜본에 살고 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멜본한인교회 첫 담임목사가 서두화 목사였으니 그럴 수 밖예요. 두 자매 할머니는 저의 유학생활을 격려하며 늘 기도해주셨고,서 목사님은 영어훈련과 논문교정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신학 선생님이셨던 분이 오랜 시간의 간격을 넘어 어쩌다 아들의 영어 선생님까지 된 것이지요.
 
'어쩌다'의 절정은 제가 멜본한인교회 담임목사가 된 사건일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합니다. 저같이 부족한 허물 덩어리에게 너무나 귀중한 교회를 섬기도록 하신 것도 놀랍고, 아버지의 선생님이 초대목사로 섬긴 교회에 아들이 7대 목사로 부임한 것도 참 놀라운 일이지요. 더 기가 막힌 것은, 80년대 민주화 통일운동을 경험한 저 같은 민족주의자가 어쩌다 조국교회를 배반(?)하고 이민목회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어쩌다'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일 테지요. 저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교회엔 오래된 이민자들이 많고 지금도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대부분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지요. 아기들까지 합쳐서 주일에 교회에서 점심 먹는 사람이 8백명 가까운데, 한 사람 한 사람 살아온 얘기를 하려면 그 수많은 '어쩌다'를 빼고는 이야기가 도무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민의 목적과 이유가 각자 나름대로 있지만, 우리는 알지요. 그 '어쩌다'를 곰곰이 생각할 때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곳까지 이끄셨는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지, 하나님의 깊은 속셈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지요.
 
저는 정말 어쩌다 이민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 같은 '어쩌다 인생'에게도, 어쩌다 조국을 떠나 흩어져야 했던 한인 디아스포라의 앞날에도 옹골찬 기대를 걸고 계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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