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기독교백주년예배] 제주에 헌신한 공로자 표창

[ 교계 ] 교회목회 부문의 고 강문호목사외 4명, 선교 1백주년 기쁨 도민과 함께 나누고자 시상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5월 27일(화) 00:00

   
 
고 강문호목사.
 
   
 
고 강석범선생.
 
이번 제주기독교1백주년 기념예배에서는 선교 1백주년의 기쁨을 제주도민과 함께 나누고자 교회목회, 교육인재 양성, 사회봉사, 농업경제, 문화예술 등 총 5개 부문에서 제주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자들을 선정해 시상했다.

 

우선 교 회목회 부문에 꼽힌 고 강문호목사 (1899~1986)는 복음의 불모지 라 불리던 제주도에서 1942년부터 1971년까지 30년간 한 교회 만을 섬기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한림교회 원로 및 제주노회 공로목사. 제주민들에게 계몽과 더불어 선교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유치원, 성경구락부 등을 운영했던 강 목사는 1944년부터 제주노회장을 26년간 역임하며 한국장로교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리될 때 많은 교회들을 통합측으로 이끌었다. 그 무렵 8ㆍ15, 한국전쟁 등 사회 대변혁기를 거치면서도 복음전파에 주력했고 3ㆍ1운동을 주도하며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교육인재양성 부문에 수상한 고 강석범선생(1917~1979)은 제주중학교장, 제주상업학교장, 제주초급대학 교직과 담임교수, 제주도교육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일평생 교직에 몸담아 온 강 선생은 제주지역에 기술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주실업전문학교를 설립해 후학 양성에 돌입했다. 그 결과 1979년에는 4년제 전문대학으로 승격했고 이러한 공로로 제주대학창설공로표창, 국민포장 등을 수상했다.

   
 
오성찬선생.
 

   
 
고 강창학선생.
 
사회봉사 부문의 고 강창학선생(1927~2003)은 흥신산업사를 경영하며 서귀복초등학교부지 기증, 성요셉양로원부지, 건물 집기기증, 문예회관 및 대포동노인회관 건립기금 기부 등 일평생 자신이 가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제주의 록펠러(록펠러재단 등을 세워 4억만 달러 이상의 자선사업을 펼친 역대 세계 최고 부자)'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특히 자신의 소유인 약 30만㎡의 서귀포지역 땅을 기증해 현재 제주도민들의 자랑으로 꼽히는 강창학종합경기장을 세웠고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농업경제 부문에 당선된 허인옥교수(제주대 명예)는 1962년부터 제주교육대학과 제주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제주지역의 대표적 농산물 감귤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나는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선생이요, 나서면 농부다"라는 그의 신조처럼 제자양성 및 감귤 산업을 위해 열정과 헌신을 다한 인물로 손꼽힌다. 허 교수는 일본원예학회, 한국식물학회, 한국차문화학회 등 국내외 다양한 학회에서 활동하며 응용식물학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는 제주도 영농지도자 연합회 지도위원과 제주농업포럼 회장, 농촌진흥청 난지농업연구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 부문에 수상한 소설가 오성찬선생(제주영락교회 안수집사)은 지난 1969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별을 따려는 사람들'이 당선되며 문인의 길을 걷게 된다. 제주지역 신문인 제주신문 기자, 제남신문 편집부장 등 10여년간 기자로 활동했던 오 선생은 척박한 절해고도(絶海孤島)의 환경을 극복해온 제주도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한라산', '어두운 시대의 초상화', '진혼 아리랑', '바람난 마을' 등 수십 편의 장편, 중편 소설작품으로 펴냈다. 이 공로로 2006년에는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선정됐으며 제주문인협회장, 제주역사연구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도서출판 반석' 대표, 소설가협회 중앙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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