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생명'의 밥상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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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15일(목) 00:00

정 경 호
영남신대 교수ㆍWARC실행위원

요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값진 음식물들을 가지고 마치 전쟁 치르듯 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한미 FTA가 체결되면 유전자 변형 옥수수와 콩 쌀눈을 레이저로 죽여 배에 싣고 들여올 미국산 볍씨가 우리 땅에 들어와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가며 자랐던 소의 고기, 환경호르몬, 각종 첨가제, 방부제 그리고 각종 농약이 침투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죽임의 먹거리'가 우리들의 밥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밥상의 현주소

지난 4월 18일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때를 맞추어 한국 측과 미국 측 사이에서 진행된 쇠고기 협상에서 30개월 이상 된 소에다가 광우병(BSEㆍ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우해면양뇌증)에 취약한 특정 위험물질까지 수입하게 된 것이다.

광우병이란 인간의 더 많은 경제적 이윤을 위해서 소를 빨리 자라게 하고 먹을 수 없는 부위를 버리는 것을 줄이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소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병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이러한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리기 때문인데 여기에 대해서 지금까지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일이다.

30개월이 자꾸 거론되는 까닭은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린 소의 99%가 30개월 이상의 소였다는 점 때문인데 대체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 이것은 국제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협상 결과 바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우리가 수입을 하기로 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곧 광우병을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이 집중되는 일곱 개 부위가 있는데, 이번 협상에선 30개월 미만의 소에서는 편도와 회장원회부, 작은 창자 끝부분의 2미터만 제외하고는 나머지 다섯 개 부위를 모두 수입하기로 했고 30개월 이상의 소에서는 일곱 부위 모두가 들어오지는 않지만 작은 창자의 끝부분과 연결돼 있는 내장이 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밥상의 현주소이다.

생명죽임의 밥상

성서에서 발견되는 생명죽임의 밥상을 생각해보자. 마가복음 6장 14절에서 29절까지를 보면 헤롯의 잔치 곧 헤롯의 밥상이 나온다. 헤롯 안티파스란 사람은 정통성이 없는 헤롯 왕가에 태어나서 폭군이었던 헤롯 대왕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나서 자신이 탈취한 권력과 힘을 가지고 동생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대를 침략한 로마에 아부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영토와 왕권을 부여받는 사람이다.아마 헤롯의 잔치는 로마식이어서 좋은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비스듬히 누워서 먹으며 포식하고 마침내는 토하는 약을 먹어가며 춤과 음악으로 한바탕 화려한 잔치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에게 착취한 것으로 화려한 왕궁을 지었으며 강제로 거두어들인 것으로 그들은 멋들어진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폭군의 모습을 마가복음는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잔치의 절정의 순간에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버리는 밥상 곧 죽음의 밥상이 그것이다.

생명살림의 밥상

헤롯의 잔치 이야기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30-44절까지는 예수님이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밥상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사흘을 굶어가며 '참'이 무엇인지를 들으면서 찾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여 행여나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던 것이다.

이때 어린 아이가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를 내어 놓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것 위에 손을 얹어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나누어 주었더니 5천 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의 시작은 자기의 것이라고 자기 입에만 넣지 않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내놓으면서 시작이 된다. 사실 이것이 기적이다. 그 결과 우리가 알듯이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으며, 그러한 작은 사랑이 변해서 된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열두 광주리에 넘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살맛나는 밥상을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다.  예수님의 밥상은 화려한 옷을 입지 못했어도, 좋은 음식은 없이 그저 보리떡과 생선뿐이었어도 모두가 기뻐하고 모두 함께 즐기고 있는 생명살림의 밥상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러한 생명의 밥상은 곧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요,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생명살림의 밥상이다.

이는 한 마디로 자기의 것을 자기 주머니에만 넣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잔치, 곧 나눔의 밥상일 때 가능한 것이다.

밥상 앞에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나의 살이며 피"라고 말씀하신 밥상머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밥상의 먹이로 자신의 삶을 내어놓지 않으셨던가? 바로 여기에 생명의 밥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속에 쇠고기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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