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에서 온 편지< 5 >- 美 해외선교연구원에서의 첫 안식년

[ 교계 ] 인도네시아 서성민선교사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8년 05월 07일(수) 00:00

   
 
1993년 첫 안식년을 보낸 해외선교연구원(OMSC, 미국 뉴 헤이븐 소재)에서 가족과 함께.
 
5년의 첫 텀이 끝나갈 무렵, 후원교회 선교위원장 박경화 장로님 내외분이 방문하셨다. 며칠 간 선교지를 둘러보시더니 '선교사님 한 5년 되셨으니 이제 안식년을 하셔야겠습니다' 하시며 안식년을 권하셨다. 장로님은 공군 군의감으로 전역하시고 일신병원 원장으로 계셨는데, 군에서는 좋은 의사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몇 년 마다 미국 등지에 유학을 보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서목사가 선교사로서 오래 일하면 좋겠는데 안식년을 어디에서 가지던지 모든 것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교회의 허락으로 1993년 3월부터 1년의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서울에서 얼마간 머문 후 서정운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미국 뉴 헤이븐에 있는 해외선교연구원(OMSC)에 가게 되어 출발했다.

당시만 해도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갖는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고 더욱이 미국으로 안식년을 간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안식년을 신청했다가 후원 교회로 부터 선교지원 중단을 통보받은 선교사의 경우도 있었기에 많은 선교사들은 후원교회 목사님도 못 갖는 안식년을 청원한다는 것을 큰 모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교를 오랜 기간 해온 국제선교단체들은 보통 4년 선교지에서 일하면 의무적으로 1년 안식년을 갖게 하여 계속 교육 및 케어 프로그램에 참여케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안식년에 대한 이해 부족, 안식년을 위한 주택과 선교사 안식년 재교육 프로그램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상적인 안식년을 갖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OMSC는 정말 좋은 기관이다. OMSC에 대해 서 정운목사님께서 '선교사 안식년을 위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는 선교세미나에 부부가 같이 참석하였다. 강사진은 대부분 선교지에서 10년 이상 사역하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분들이었기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분들의 강의는 지난날을 돌아보고 새로운 사역을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밤에는 길 건너편에 있는 예일대학교 신학부 도서관에 가서 늦게까지 책을 읽었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근처의 공원에 가서 쉬고 또한 세미나가 없는 주간에는 가족여행도 하였다. 매 화요일 저녁에는 함께 생활하는 선교사와 제 3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각자의 사역을 소개하고 기도하며 교제를 나누었다.

OMSC는 정기세미나 외에 북미주 50여 선교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선교 포럼, 목회자 및 신대원 학생들을 위한 선교세미나를 개최하고, 선교 저널과 선교 서적들을 발간하여 명실공히 세계 선교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첫 번 안식년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안식년을 마치기 직전 마지막 포틀럭(potluck) 시간에 원장이신 제럴드 앤더슨 박사께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매우 감사했지만 후원교회와 안식년을 1년간 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사양하고 선교지로 출발했다.

비행기가 자카르타 공항에 접근하자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야! 인도네시아 땅이다!" 하며 마치 고향 땅에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첫 안식년의 추억은 뉴 헤이븐의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지금도 늘 마음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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