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노숙옷' 벗고 '섬김'으로 새사람 됐죠"

[ 교계 ] 거리의천사들 한사랑봉사단 일원으로 활동, 10년 노숙생활 접고 취직해 새 인생 살아가는 김 씨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8년 03월 19일(수) 00:00

바다의 동식물이 절반이상 감소했다는 태안 앞바다. 최근 '검은 재앙'으로 죽은줄 알았던 그곳에서 자그마한 생명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희소식이 들린다. 마치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말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동안 노숙생활을 하다 얼마전 새 삶을 찾은 김 씨(50세ㆍ장함교회 출석)도 마찬가지다. 태안 덕분에 오래 입고 있던 '노숙옷'을 벗고 '섬김'으로 새사람이 됐다.

"이젠 살아갈 희망이 생겼어요. 봉사가 사람 바꿔놨죠, 뭐." 호탕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어느덧 개운해진 태안 앞바다처럼 시원하다.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한달 뒤인 지난 1월 17일 태안 의항리 개목항 한국교회봉사단 본부. 노숙인 10여 명이 태안 앞바다에 '떴다'. 가슴팍에는 '한사랑봉사단'이라는 큼지막한 여섯 글자가 새겨진 파란띠가 둘러져 있었다.

"기름을 닦으러 갔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진행요원 네 다섯명이 2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상대하며 방제복 장화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분배하고 있었어요. 그 소수의 인원이 배식봉사부터 봉사작업이 끝난 후 뒷정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죠. 기름이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노숙인들로 구성된 거리의천사들(대표:안기성) 소속 '한사랑봉사단' 팀원들은 그 광경을 보자 입이 '딱' 벌어졌더란다. 말그대로 기름닦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원봉사자들을 통솔하고 장비를 분배하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장비를 배분한 뒤에는 천리포 해수욕장까지 가서 밥, 국, 김치 등을 싣고 와야 했죠. 또 작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다음번에도 사용 가능한 방제복을 골라내고, 기름이 너무 많이 묻어있는 방제복은 습포제로 닦아내고 고무장갑과 장화도 정리해 놓고…. 기름닦는 일보다 더 바빠요." 태안에는 그후로도 두 차례 더 봉사를 다녀왔다.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는지 한국교회봉사단에서 와달라며 단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 요청하기도 한다고.

김 씨는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알콜중독자였다.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셨다. 경제 암흑기 IMF시절, 김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단다. "제게 사채빚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달아났죠. 듣기로는 중국으로 도망가서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있대요. 저는 집에까지 피해를 끼칠 수 없어 아내와 이혼하고 노숙의 길로 접어들게 된거죠."

을지로역이 그의 주된 거주지였다. 낮에는 파지를 주워 팔고 저녁에는 번 돈으로 술과 안주를 마련하는데 몽땅 썼다. "의미없이 살던 중 작년에 거리의 천사들을 만나게 됐어요. 만날때마다 먹을거며 속옷 양말 등을 갖다줬죠. 만난지 6~7개월 지났을 때였어요. 노숙인들로 구성된 봉사단체가 있는데 같이 한번 가보자는 제안이었죠."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지역센터 '햇살보금자리'가 김 씨의 첫 자원봉사지였다. "내가 도우러 갔는데 더 많이 받고 왔어요. 나보다 힘든 이들도 살아가려고 필사적인데 나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살아갈 의미를 찾게 된거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봉투를 접는 장애인들을 보고 김 씨는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던 검은 먹구름이 서서히 걷혀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홀트복지관, 태안 방제작업 등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며 김 씨의 인생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김 씨만이 아니다. 함께 봉사다녔던 몇몇 노숙인들도 점차 변화되어갔다.

또한 거리의천사들 대표 안기성목사(장함교회 시무)를 통해 예수님의 존재도 알게 됐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단다. "노숙인들에게는 다시 일어설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제겐 저 자신을 믿는 마음이 생긴거죠."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던 그에게 그보다 값진 선물은 없었다.

부활절을 앞두고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만큼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아현동에 있는 구세군 '사랑나눔가게'에서 일하게 됐어요. 재활용품과 옷, 커피 등을 파는 가게인데 지금 연수받는 중이에요. 사실 취직자리가 여러 곳 들어왔었는데 이곳이 임금은 적어도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어서 선택했어요. 이제 제 삶의 우선순위는 돈이 아니라 봉사거든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부활한 김 씨는 한마디로 세상에서 '인기짱'이 됐다. 고시원에 거처를 마련하고 술도 끊었단다.

이제 '봉사와 섬김'은 그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부활했듯 그는 봉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요즘 김 씨는 일주일에 한 두번 예전 노숙시절에 지냈던 을지로역을 찾는다. "일부러 가요. 가서 예전에 함께 술마시며 어울렸던 사람들을 만나 말끔해진 제 모습을 보여주죠. 나처럼 변화된 삶을 살라고 충고하면 가끔 욕도 얻어먹는데 그래도 가요.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기쁨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도 말이죠."

'부활'의 사전적 의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도 있지만 '쇠퇴하거나 폐지한 것이 다시 성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부활절, 김 씨에게도 이날은 분명 다시 살아난것 만큼이나 기쁜 날이리라.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