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상, 사람, 관계 요리로 소통하다

[ 교계 ]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 제게 주시는 격려라고 생각해요"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11월 30일(금) 00:00

"과연 음식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부터 궁금증이 시작됐다. 예로부터 음식은 정(情)을 소통하는 매개체로 쓰였다. 마을에서나 집안의 애경사가 있을 때면 이웃들을 초청해 풍성한 음식으로 잔치를 벌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것도, 예배 후 교회에서 애찬을 나누는 이유도 모두 매한가지. 함께 음식을 먹으며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 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하드 사먹기를 즐겨했다. 'ㅆㅆㅂ'라는 이름의 보라색 하드는 포도 맛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개에 백원하던 하드는 어린 내가 혼자 다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또 매일 그것을 사먹기에는 내 주머니 사정 또한 변변치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구멍가게 주인집 딸이었던 그 언니는 특별히 내게만 50원을 내고 하드 반쪽을 사먹는 것을 허락했다. 또 심부름 등으로 가게를 찾았을 때 남은 반쪽을 자신의 어머니 몰래 내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음식으로 소통했던 그 특별한 추억은 아직도 내 마음 한 켠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물며 이런 미물 같은 사소한 음식거리가 오간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했는데,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들고 아무리 생면부지의 사람을 찾아간다 해도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때문에 실험을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남자 요리사가 판을 치는 요즘은, 예전처럼 '요리는 여자가 해야한다'는 구식 사고방식이 먹히지 않을 때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손맛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요리를 들고 찾아가는 대상은 여성으로 정했다. 연령은 30~40대. 어느 정도 인생의 중반을 걷고 있는 여성이 추억하는 대상이나 만나고 싶은 이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일을 성사시키기는 생각보다 꽤 어려웠다. 대상자를 찾는 중 "왜 굳이 요즘시대에 여성이 요리를 들고 찾아가야 하느냐"라는 페미니스트 적인 발언도 있었고, "음식만들기가 부담스럽다" "음식 만드는 건 상관없는데 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 "내가 받는 것도 별로인데 과연 상대방과 음식으로 소통이 되겠냐" 등등 대상을 물색하며 다양한 의견을 접했다. 중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가 고집이 있지 한번 뽑은 칼은 무라도 찔러야 하는 법, 수소문 끝에 "제가 한번 해볼게요"라고 선뜻 응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연동교회 한애경집사(44세). 평소 기자가 자주 발걸음을 하는 연동교회 찻집 '다사랑'의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누구를 줄까 고민되네요. 얼마 전 '고맙습니다 성령님'(규장) 책을 읽었는데 너무 감명 깊게 봐서 그 책의 지은이인 손기철장로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가능할까요?" 한 집사의 요청에 기자는 손기철장로(온누리교회 출석, 건국대 생명환경과학대학 학장)에게 연락을 취하고 만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이제 서로 만나기만 하면 됐다.

거사일은 지난 13일, 한 집사와 기자는 손 장로가 있다던 오륜교회(합동)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후 2시에 만난 터라 부담스러운 음식보다는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정성스레 만든 샌드위치와 평소 피곤할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손 장로를 위해 피로회복에 즉효인 대추차가 마련됐다. 긴장되냐는 질문에 한 집사는 "약간 떨린다"고 대답했다. 교회에 도착해 전화를 거니 우리가 있는 1층으로 내려오겠다는 대답이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손 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장로님." 첫 인사와 함께 어색하던 순간도 잠시, 한 집사가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손 장로에게 전달하자 금세 소통이 됐다. "책에서 눈으로는 성경책을 읽고 있는데 입으로는 방언이 나왔다는 부분을 읽고 장로님께 전화를 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똑같은 경험을 했거든요. 전화로 간증을 나누고 싶었죠." 한 집사는 책을 통해 받은 은혜를 손 장로에게 전했다. 또 함께 차를 마시며 평소 궁금했던 부분을 질문하고 서로의 간증을 나눴다. 마치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기운이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럼, 과연 이 두 사람은 무엇으로 소통할 수 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지만 자그마한 정성(음식)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축복이죠. 하나님께서 이 분을 통해 제게 주시는 격려라고 생각해요. 이 대화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니까요. 음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네요."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손 장로는 서로 통(通)하는 게 있었다고 대답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 집사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마음이) 충분히 전달됐어요. 음식을 만들면서 '하나님께서 장로님을 위로해 주시려고 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거라 생각하면 감사하겠다'라고 기도했는데 아까 장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깜짝 놀랐지요.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분인데, 하나님께서 음식을 통해 만날 수 있게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음식, 소통의 도구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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