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낙엽에게 물어보라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11월 14일(수) 00:00

중국의 고사성어 가운데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지만 무용지용이라는 말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말입니다. 무용지용은 말 그대로 "쓸모가 없는데도 쓸모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 당대에 왕궁을 짓는 최고의 장인 목수로부터 비롯됩니다. 목수가 나무를 구하러 전국을 헤매는데 가다가 몇 십 아름이나 되는 큰 상수리나무 하나를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이렇게 좋은 나무를 가져다가 궁궐을 지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나 목수는 그냥 지나쳐 갔다는군요.

그런데 그 날 밤 목수의 꿈에 상수리나무가 나타나 호통을 쳤습니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나무로 취급을 안 하는데… 다른 나무와 나를 비교하지 말라. 네가 생각하는 소나무나 향나무같이 쭉쭉 뻗었으면 내가 천 년을 살 수 있었겠느냐. 벌써 도끼에 찍혔을 것이다. 나는 열매도 맺지 못하고 곧게 쭉 뻗은 나무가 아니기에 이렇게 천년을 살아온 것이다. 꼭 궁궐에 가야만 좋으냐?

이 이야기는 잘났다는 것 때문에 도끼에 찍혀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나무를 통해 겸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이솝(Aesop) 우화 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수탉 두 마리가 암탉 한 마리를 두고 결투를 벌입니다. 서로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다 마침내 이긴 수탉이 "이제는 천하가 다 내 세상이다"라며 지붕에 올라가서 "꼬끼오"하고 포효(?)했답니다. 마침 그 때 먹이를 찾아 하늘을 날아다니던 독수리가 지붕 위에 올라와 있는 수탉을 발견하곤 바로 잡아먹었답니다.
 
세상 유혹에 넘어지거나 함정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잘났다"고 하는 이들입니다. 본래 사람이 질그릇처럼 깨어지기 쉽고 연약한 존재임을 안다면 그런 유혹이나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 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이 되면 젊은이들이 애송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 '가을 엽서' 전문입니다.
 
나뭇잎은 봄과 여름에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와 양분을 만들고, 수분을 증발시켜 온도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햇빛이 줄어드는데도 나뭇잎이 그대로 있으면 에너지는 덜 만드는 대신, 수분을 계속 증발해야 하므로 나무가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 나뭇잎은 낙엽이라는 자기희생으로 나무를 살리는 것입니다.
 
낙엽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낮고 비천한 곳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 낮아짐,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섬김의 모습,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살리신 그 희생과 사랑. 낮은 곳으로 한없이 내려앉으며 끊임없이 나눠주려 하신 그 사랑… 만추의 계절, 낙엽을 밟으며 그 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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