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을 들녘에서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10월 19일(금) 00:00

편집국 후배 기자의 결혼식이 주말 오후 지방에서 열리게 돼 오랜만에 기차를 탔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 풍경은 시멘트 콘크리트 속의 답답한 회색 도시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요로움이 있어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늦여름 폭우와 태풍으로 수해 피해가 심했다고 했지만 그래도 가을 들녘은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엔 추수 후 남은 볏 짚단들을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둘둘 말아 놓았는데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또 다른 마을엔 할아버지와 손자가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을 따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습니다. 문득 감나무를 보며 '까치밥'이 생각났습니다. 수확기에 높은 나무 위의 과일을 전부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놓은 것 말입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을 때 먹이를 찾지 못하는 새들이나 작은 짐승들이 한 끼의 먹이라도 해결하라고 남겨 놓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여유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는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딱히 까치만 먹는 것은 아닐진대 까치밥이라 이름한 것은 사람에게 항상 친근하고 가까이 있으며 반가움을 전해준다는 까치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붙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신 24:19). 

신명기의 이 말씀은 사랑과 긍휼을 베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는지요. 오늘 이 시대 교회나 사회는 너무 각박합니다. 한 알의 이삭도 남기지 않고 싹싹 쓸어갑니다. 나 혼자만 잘 살겠다고 모두 내 주머니로 다 가지고 가는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만 부흥하고, 우리끼리 잘되겠다"는 그런 마음이 기독교를 이 사회로부터 질시받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삭을 남길 줄 아는 여유, 그것이 이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오르세 미술관 전이 열렸는데 거장 장 프랑수와 밀레의 '만종'을 볼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미술관을 통째로 옮겨올 수는 없었기에 밀레의 그림은 ‘만종’ 한 점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정작 보고 싶었던 그림은 '이삭줍기'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이삭줍기'는 추수가 끝난 황금 들녘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세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추수를 거둔 사람들의 풍요로움과 왁자지껄함은 멀리 원경으로 밀려나 있기에 화면은 이삭을 줍는 세 사람의 모습에서는 엄숙함이 느껴집니다. 두 여인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고, 한 여인은 자신이 모은 이삭들을 간수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의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밀레는 농민의 모습을 종교적 색채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밀레의 그림이 좋은 이유는 그 속에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가 있고, 그 안에 가족과 이웃 간의 사랑이 있고, 결실을 맺게 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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