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 에필로그

[ 산방일기 ] 장돈식산방일기(130, 완)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7년 10월 11일(목) 00:00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독자님들과의 이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장돈식의 산방일기'라는 주제로 독자님들과의 만남은 4 년 전인 2003 년 3월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청산(靑山)은 태고(太古)부터 백운(白雲)을 지니듯, 사람은 나면서부터 자연 그리움을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없고 가난하던 시절과 달리 의식주는 사회 전반에 이르도록 어느 정도 궁핍에서는 벗어났고 즐길 거리도 다양한 세월을 살고 있건만 우리 모두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갈등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이 그립고 그 품에 안기우고 싶은 자연을 마음 껏 누리며 살 수 없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20여 년 전 아내의 지병을 치료하던 주치의가 현대 의술로는 더 이상의 치유는 불가능하니 자연으로 생활 환경이나 바꿔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게 60대 중반이었습니다. 인명에 관한 권유임에 주저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한 난마처럼 얽혀있는 모든 삶의 인연을 무 자르듯 끊고 배낭 하나씩 만을 지고 삶의 터전을 등지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곳 치악산 산록에서 화전민이 살다가 버리고 간 누옥(陋屋)에서 시작한 산중생활에서 아내는 3년 만에 건강을 다시 찾았으나 저희 두 사람은 산중생활의 매력을 버릴 수 없어 아주 눌러 앉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장돈식장로
 
그 무렵 자연에 허기진 필자는 이 방그러니 계곡의 한 그루의 나무, 한 줄기의 푸새, 산의 하늘을 나는 새, 골짜기를 뛰고 숨는 길짐승, 이끼 낀 바위,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 하나하나에 흥분하고 심취해서 마구 글로 쓰던 그 날의 기억들,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그저 풋풋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때처럼 산을 쏘다니고 , 쭈그리고 앉아 관찰하고 감명에 몸이 떨리는 정열은 엷어졌습니다.

대신 이 계곡에 뿌리를 내리고 주인으로 자처하는 식물들, 저 좋은 자리를 가려 둥지를 마련하고 사는 모든 날짐승, 길짐승, 땅 밑을 기는 곤충들에게까지 혈연 같은 진한 정을 느낍니다. 전에는 자연 속에서 마치 충전기 안에 들어앉은 배터리처럼 바닥난 서정을 충전하고, 넉넉한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황홀한 고독을 만끽하고 피톤치드향 물씬한 공기와 청간수(淸澗水)를 마시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서두에 쓴 것같이 우리 모두 자연에 목마르고 서정에 굶주리고 있음을 아는 터에 그런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처지에 사노라면 일말(一抹)의 책임감 같은 심정을 느낍니다. 마침 기독공보 편집국의 권유를 받는 날부터 이 방그러니에 차고 넘치는 정서를 에세이라는 바가지로 퍼 올려 독자님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이 4년 이라는 기간에 1백30 회를 썼습니다.

글 속에서는 1行 1句 도 비친 바는 없습니다만 필자는 금년으로 미수(米壽)라는 88세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쓰고 유능한 분에게 이 귀중한 난(欄)을 물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깨달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간의 편집국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적절한 편달아래 펑크 내지 않으며 오늘에 이르렀음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무엇보다도 좋은 글도 아님에도 읽어주시고 더구나 독후의 감상들을 메일로, 전화로, 혹은 우거까지 내방 편달해 주신 어른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