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방일기 ] 장돈식산방일기(130, 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독자님들과의 이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장돈식의 산방일기'라는 주제로 독자님들과의 만남은 4 년 전인 2003 년 3월이었다고 기억합니다.
필자는 20여 년 전 아내의 지병을 치료하던 주치의가 현대 의술로는 더 이상의 치유는 불가능하니 자연으로 생활 환경이나 바꿔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게 60대 중반이었습니다. 인명에 관한 권유임에 주저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도시를 중심으로 한 난마처럼 얽혀있는 모든 삶의 인연을 무 자르듯 끊고 배낭 하나씩 만을 지고 삶의 터전을 등지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곳 치악산 산록에서 화전민이 살다가 버리고 간 누옥(陋屋)에서 시작한 산중생활에서 아내는 3년 만에 건강을 다시 찾았으나 저희 두 사람은 산중생활의 매력을 버릴 수 없어 아주 눌러 앉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장돈식장로 | ||
대신 이 계곡에 뿌리를 내리고 주인으로 자처하는 식물들, 저 좋은 자리를 가려 둥지를 마련하고 사는 모든 날짐승, 길짐승, 땅 밑을 기는 곤충들에게까지 혈연 같은 진한 정을 느낍니다. 전에는 자연 속에서 마치 충전기 안에 들어앉은 배터리처럼 바닥난 서정을 충전하고, 넉넉한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황홀한 고독을 만끽하고 피톤치드향 물씬한 공기와 청간수(淸澗水)를 마시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서두에 쓴 것같이 우리 모두 자연에 목마르고 서정에 굶주리고 있음을 아는 터에 그런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처지에 사노라면 일말(一抹)의 책임감 같은 심정을 느낍니다. 마침 기독공보 편집국의 권유를 받는 날부터 이 방그러니에 차고 넘치는 정서를 에세이라는 바가지로 퍼 올려 독자님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이 4년 이라는 기간에 1백30 회를 썼습니다.
글 속에서는 1行 1句 도 비친 바는 없습니다만 필자는 금년으로 미수(米壽)라는 88세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쓰고 유능한 분에게 이 귀중한 난(欄)을 물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깨달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간의 편집국 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적절한 편달아래 펑크 내지 않으며 오늘에 이르렀음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무엇보다도 좋은 글도 아님에도 읽어주시고 더구나 독후의 감상들을 메일로, 전화로, 혹은 우거까지 내방 편달해 주신 어른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