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지혜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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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05일(수) 00:00
조용훈
한남대학교 교수ㆍ기독교문화연구원 원장

'소비사회는 현실이다.' 이 말은 우리가 소비사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핸드폰과 텔레비전 그리고 자동차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국가 경제적으로도 소비가 위축되고 줄어들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소비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 국가의 안정에 절대적인 요소가 되고 말았다. 소비가 인간과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사회의 끝이 막다른 골목길 같다는 데 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그리고 대량폐기 사회시스템은 필연적으로 파국을 향하게 된다. 개인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해야 하고,국가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더 많은 소비는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제한된 천연자원을 더 빨리 고갈시키고 더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소비의 증대에 따라 사람들의 만족감이 커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욕망이 커가면서 상대적 빈곤감만 커가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구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그리고 나도 사는 길 말이다.

첫째,지속 가능한 소비생활이다. 지속 가능한 소비란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현재세대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소비형태다. 쉽게 말하면, 소비하되 자연생태계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비하는 패턴이다. 우리 후손들이야 어찌되든 말든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부끄러워 해야한다. 지구 자원은 하나님이 우리세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이 땅을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서 창조한 것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선 무조건 크고 비싼 것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맹종소비, 모방소비, 즉흥소비,과시소비…. 모두 바꿔야 할 잘못된 소비행태들이다.

둘째,검약(儉約)과 절제(節制)의 윤리관을 회복해야 한다. 검약과 절제는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다. 검약과 절제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길이며 남을 도울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소비사회는 그 반대가 진리라고 세뇌한다. 소비를 미덕이라 하며 검약과 절제를 궁상스럽다 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교회학교에 절제공과가 있을 정도로 절제교육을 중요시했다. 검약과 절제야말로 지구 환경 위기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시금 교회와 가정에서 교육하고 습득해야 할 덕목이다.

셋째, 자족하는 마음이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이는 검약과 절제도 벽에 부딪친다. 아무리 환경을 소중히 생각해도 당장 불편하면 쓰게 되어 있고, 욕심이 생기면 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족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합리적인 소비도 불가능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족하는 마음이라야 행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욕망에 반비례하고 만족에 비례하는 것이라 정의할 때, 욕망이 클수록 만족감은 줄어들고 행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며 일체의 조건 속에서 자족할 줄 알았던 사도바울의 삶(빌 4장)이야말로 우리시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델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의 사회적 차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소비 양상, 검약과 절제, 자족하는 마음은 다 개인적인 문제들이다. 필요한 일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 윤리관이 뛰어난 사람만 할 수 있는 높은 경지다. 개인의 양심과 윤리관에만 호소하는 것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회운동으로서 소비자운동의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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