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장애여성 능력을 개발하라"

[ 교계 ] 장애인 시설 대부분 교회가 운영, 개성 · 능력 개발시켜주는 조력자 되길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08월 02일(목) 00:00

   
어린시절에는 크리스찬이었으나 현재는 천주교 신자라는 장애여성'공감'의 박영희대표. 박 대표는 "천주교에서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자신을 '불쌍한 아이'가 아닌 꼭 필요한 사회 구성원으로 확인시켜 줬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이경남기자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2시가 되면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에는 각종 장애를 가진 여성들로 붐빈다.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 여성,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여성 등 장애여성들은 자신들만의 잔치를 가지려는 듯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론시간. 올해는 '장애여성의 연애와 사랑'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조곤조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장애여성들의 토론현장 모습은 비장애인들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 오히려 더욱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에게 차례로 순서를 건네주며 차분히 진행된다.

언어장애를 가진 한 여성이 입을 열면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일제히 귀를 기울인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말할 지라도 여성장애인들은 그녀가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비장애인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풍경이겠지만 누구하나 말하는 가운데 참견하는 법이 없다. 끝까지 들어준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상대방 눈치 안봐도 되고 마음껏 수다를 풀 수 있는 이야기 장터에서 그간 곪은 상처들로 매말랐던 가슴을 시원하게 축이고 있었다. 때문에 몇번이나 지하철을 갈아타고 이 곳까지 달려왔던 시간들이 그녀들에겐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다.

3시간 여의 짧지 않은 시간끝에 토론이 마무리됐다. 저마다 아쉬운 마음을 간직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 채 자신의 위치로 돌아간다. 비단 3시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장애여성들은 그들만의 질서를 유지하며 낙오자 없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여성장애인'. 이 다섯 글자가 사회에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건 불과 7년여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도 전후반을 기점으로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장애여성공감' 등 여성장애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 단체가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부터 장애여성들은 이땅에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굳이 장애인이라는 단어의 포괄적 범주에서 벗어나 장애여성으로 분리시킨 이유에 대해 장애여성 단체의 실무진들은 "장애인이라는 말에서 배제되어온 장애여성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라고 말한다.

가부장적인 한국 전통 사회문화 속에서 장애여성들은 실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장애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중의 굴레 속에서 각자의 개성과 인권을 무시당한 채 살았다. 걷는 모습이나 말하는 모습이 다르다고 차별받았고,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내지 못한다며 이혼당하기도 했다. 또한 교육, 취업, 임금에서의 차별 뿐만 아니라 상습적인 폭력과 성폭행도 그들이 고통당하는 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펴낸 '여성장애인 생활실태와 대책'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장애인들은 우리 사회속에서 채용이나 승진, 임금정책 등 어느 하나 차별받지 않는 것이 없다. 국내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이 59.4%, 여성이 29.3%로 여성장애인이 남성장애인보다 약 1/2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같은 차이를 보이는 데에는 여성장애인 다수가 무직이거나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나 취업 장애여성의 경우 농림어업이나 단순노무직 및 서비스 판매직에 종사하고 있어 대부분의 직업 환경이 열악했고, 임금에 있어서도 남성 취업장애인의 월 평균 수입이 86.8만원인데 비해 여성은 45.8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어 생활의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교육수준도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여성장애인의 68.5%는 무학 및 초등학교 학력을 갖고 있었다. 4.2%의 여성장애인은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는 11.2%의 비율을 보이는 남성장애인에 절반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2005년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장애인 수는 약 2백14만8천7백명. 이중 여성장애인은 재가장애인 84만2천8백명, 시설장애인 2만2천6백명을 포함해 약 9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2000년도에 55만9천여 명이던 것에 비하면 장애여성의 수는 훨씬 증가했지만 전문가들은 혜택이나 복지 등의 수준은 변한 게 없다고 지적한다.

'장애여성공감' 박영희 대표는 "교육, 노동, 계단같은 시설 등 우리사회는 남성과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며 "장애여성을 돕고 있는 교회도 많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박 대표는 "교회는 좋은 밥 먹여주고 좋은 옷 입혀주는 게 아닌 장애여성의 숨겨진 능력을 발휘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어린시절에는 크리스찬이었으나 현재는 천주교 신자라고 고백했다. 교회를 외면하고 성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천주교에서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자신을 '불쌍한 아이'가 아닌 꼭 필요한 사회 구성원으로 확인시켜 줬다고 답했다.

장애여성과 교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정부 인가 시설 및 미인가 시설 대부분을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인데, 교회는 장애여성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관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동일한 사람으로 인정하며 개성과 능력을 개발시켜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여성들은 오늘도 이렇게 외친다. "우리 제발 평범하게 살게 해주세요" 라고. 하지만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들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낸다. 자신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말이다. 거북이와 같이 느린 걸음을 걷는 장애여성들과 함께 발맞춰 걷는 것이 하나님께서 크리스찬들에게 명하신 지상과제가 아닐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