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옻나무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127)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7년 07월 26일(목) 00:00
나무에도 성깔이 있다. 이른 봄, 아직 눈과 얼음이 있는 빈산에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는 성급한 나무다. 반면 대추나무는 6월도 하순이 돼야 눈을 빠끔히 뜬다. 산방 앞산에는 개옻나무가 몇 그루 있다. 이 나무는 가을 단풍에 매우 성급한 나무중의 하나다. 지금은 때가 대서(大暑)와 초복, 중복이 들어있는 7월이라 녹음이 짙은 계절이다. 아직 여름이 한창인데 산의 허리언저리 숲 속에서 진홍색의 단풍을 피웠다.

   
나는 단풍을 좋아해서 이곳에 들어 올 때, 수 백 그루의 참 단풍나무 묘목을 내 땅 남의 산 가리지 않고 심었다. 근년 들어 그 무렵에 심은 단풍나무들이 화사하게 가을을 장식한다. 그런데 자생한 저 개옻나무는 태고 적부터 이 계절에 단풍을 피웠을 것이다. 가을 단풍은 그 잎이 노랗게 물드는 잡목들의 잎이 붉은 단풍을 뒷받침해 주어 한층 더 조화를 이루는데 온 산이 모두 푸른데 혼자서 붉다.

이제까지 푸르던 잎이 이렇게 여름 단풍으로 변한 것을 보노라면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여름 더위는 사람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식물들도 한 여름에는 더위를 타서 성장을 멈췄다가 삼복이 지나면 다시 자라기시작하기 때문에 나무에는 여름마디와 여름나이테가 생긴다. 같은 산의 한 편에서는 여름 순이 자라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을을 알리는 단풍이 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단풍 속에는 이미 돌아오는 봄에 피울 꽃망울과 새 싹을 배고 키우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산이 아닌 바다에서도 볼 수 있다. 사리 때가 되면 도도하게 밀려오는 조수(潮水)가 아직 만조(滿潮)가 되기 전에 바다 갯골 깊은 곳에서는 벌써 썰물 즉 간조(干潮)가 시작된다. 반대로 썰물이 다 빠지기도 전에 먼 바다에서는 들 물이 시작된다.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낚시를 많이 하는 동안에 이런 것을 늘 보아 왔다.

해방 후 태극기를 처음 보았을 때다. 태극기는 사괘를 제 자리에 그리기도 어렵고, 음양(陰陽)이니 오행(五行)이니 하며 좀 진부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일본의 일장기(日章旗)처럼 산뜻하지도 않고, 미국의 성조기(星條旗)같은 멋도 없었다. 철이 들면서 태극(太極)을 중심으로 한 영원불식(永遠不息)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매우 좋게 생각하게 됐다.

우주 생성의 근원을 풀이한 역학(易學)에서 나왔다는 태극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진홍색(眞紅色)의 건(乾), 즉 양(陽)이 시계바늘 방향으로 유연한 곡선으로 돌면서 차츰 가늘어지면 그 안쪽에서는 아청색(鴉靑色)의 곤(坤), 즉 음(陰)이 커지면서 같은 방향으로 돌아 안으로 양(陽)을 배태(胚胎)한다. 양과 음의 양의(兩儀)는 시작이 끝이요, 끝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철저한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극도의 자유주의 경제는 공평한 분배가 궁극목표인 공산주의와 이론상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분배할 자본재 생산에서 차질이 생겼고, 자유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서구국가들이 요람(搖籃)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복지사회를 만들려다 보니 부지런히 사업에 힘쓰는 사람은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그 돈이 의료비나 연금으로 쓰이는 것은 좋으나,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까지도 살려야 하는 현상으로 복지선진국들은 고민하고 있다니 극과 극은 통하는 셈이다.

오늘의 이 사회, 국가적인 혼란 속에서도 앞으로 우리가 누려야 할 질서와 평화와 풍요도 이미 배태되어 있다고 믿고 싶다. 자연 속에 묻혀 자연을 관찰하면 조물주의 섭리와 운영의 오묘한 이치에 경외(敬畏)의 마음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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