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생명' 그 상큼함을 위한 여백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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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24일(화) 00:00
   
채혜원
교회협 북한사회개발을 위한 에큐메니칼 컨소시엄 사무국장ㆍ목사

뜨겁던 폭염의 여름이 가고, 햇살이 좋기 만한 가을의 문턱에서 발갛게 익은 홍옥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상큼함을 기억하는가? 우리 인간은 하느님께서 그의 입김을 불어넣기 전 단지 부서질 흙에 불과한 존재였다. 무덤덤하고 무겁기까지한 흙덩어리에 하나님의 숨결이 흘러들어 손끝 발끝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그 역동성과 짜릿함을 상상해 볼 수 있겠는가?

우린 언제부터인가 우리 자신 안에 생명의 기운을 잃고 살아간다. 특별히 교회에서, 교단에서, 교회관련 단체들에서 일하는 가운데 이 생명의 신선함과 짜릿함을 맛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저런 목회의 현장에서 담임목사와 부목사, 전도사, 교육담당목사 등 그리고 목사란 직함보다는 사무총장, 총무, 국장, 부장, 간사로 이어지는 계급적 조직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치리적 행정가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다보면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의 '생명'을 소진시켜버리고, 이는 단지 나 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너, 우리의 관계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의 진척과 효과적 결과에만 몰두하다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엮여진 망 사이를 흘러 다니는 그 '생명'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지난 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버지니아공대의 살인적 총격사건은 한 개인이 얼마나 상처받고 있으며, 찢기고, 피로 얼룩져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병적 충동적 행동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안타까운 우리의 삶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 사건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한 인간의 생명을 이토록 처참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목회자들의 외적 내적 파괴현상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과 경쟁을 지배적 정신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인간의 존엄성보다 물질적 풍요를 우선시하는 오늘을 살고 있는 크리스찬으로서의 우리의 사명은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그 창조의 탄성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PIC;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신학에서 창조질서의 보전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제만이 아니고, 바로 여섯째 날의 피조물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명관계의 파괴를 치유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창조 질서의 보전을 위해 일하는 다양한 목회 현장에서 경쟁, 알력, 긴장, 불일치, 더 나아가 파괴적 언어들이 난무한다면, 창조 당시의 숨결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 우리가, 우리 목회자들이 어떻게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며 그들의 생명력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입김'을 잃어버린 내 자신의 생명을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치유하고, 자연과의 파괴적 관계를 회복시킴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 질서의 회복이 오늘 이 시대를 크리스찬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목회 현장의 지도력에는 우리 모두가 생명의 망으로 얽혀져 있으며, 그 관계들 속의 '생명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여백을 배려해 주는 지혜가 절실한 것이다. 일의 성과란 그 기대치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일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이미지가 상처를 입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바쁜 일정 속에, 우리의 바쁜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생명'의 맛, 그 상큼하고 신선하고 향그런 맛을 즐길 여백을 배려해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일 터 그리고 엮여진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이 '생명'의 숨결이 살아 숨 쉬도록 하는 변화의 대행자가 되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을 생명 살림의 변혁을 이끌어내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생명의 풍성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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