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한국전쟁과 남은자의 사명

[ 논단 ]

차유진 기자 echa@kidokongbo.com
2007년 06월 05일(화) 00:00
   
서임중
포항중앙교회 목사

엘리엇(T. S. Eliot)은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진정 잔인한 달은 6월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바뀌고 세월은 흘러도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사에 상처로 남아 아직도 아물지 않은 분단의 고통에 7천만 민족이 몸부림을 하고 있다. 우리의 강토를 초토화 하였고, 수백만의 사상자를 냈으며,국민 전체를 공포와 기아와 절망의 계곡에서 허덕이게 했던 승자 없는 패자뿐인 한국전쟁. 전재민(戰災民)이 3백62만 명이 넘었고,20만 명이 넘는 전쟁 미망인이 생겼으며,10만에 이르는 전쟁고아가 생겼고, 민족사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피로 채색했던 한국전쟁. 그 때 당시의 정치와 사회를 통감(通鑑)해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사회는 좌ㆍ우익 투쟁이 심화되었고,정치적 불안정은 위험 수위에 올랐던 것을 통감(通鑑)해야 되는데 오늘의 정치권이나 사회,교육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개인주의 혹은 집단이기주의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고, 사회는 온갖 부정과 비리로 하늘도, 땅도, 강도 바다도 어느 곳 하나 성한 곳 없이 상처와 오염으로 얼룩져 있어 두렵기까지 하다.

1945년 해방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런데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 싸움이 해방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교회대로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교회의 선지자적 외침이 있어야 하는상황에서 교권 쟁탈과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시시비비가 끊어지지 않았고 정죄와 비판과 심판과 독선과 쟁투를 일삼았다. 결국 하나님은 내리신 은총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 민족을 향하여 공산주의라는 막대기와 몽둥이로 매질하시고 그들의 도끼로 이 민족의 허리를 찍으셨던 것이다.

구약 이사야 10장에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의 남은 자'에 대한 교훈이 나오는데 이 교훈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하나님께 징벌을 당하게 되고 남은 자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남은 자들이 이후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진실로 의지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여기서 우리의 역사를 조명해 보면 그 전쟁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남은 자로 살려 두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잘나서도,살아남을 만한 좋은 일을 해서도 아니다. 수단이 좋아서도,전쟁 가운데서 살아남을 재간이 있어서도, 살아남는 방법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은 회개하여 진실히 하나님을 섬기라는 시대적 사명이며 메시지다. 그럼 오늘 우리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살아남은 자로서 살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에 심겨진 한 그루의 나무이다. 살아남아 있다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한민국이라는 포도원에 심어 놓은 것은 열매를 얻기 위함이지 그냥 환난 가운데서 살아남아 오늘에 있게 하려 함이 아니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남은 자로서 교회는 국가와 민족의 희망이다. 남은 자들로서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동족 선교다. 저 북한 동포에게 복음을 선교하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 통일의 길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물론 정치도,경제도 통일의 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이 나라 역사를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정한 남과 북의 화해는, 여당과 야당의 협력은,너와 나의 화평은, 그리스도의 사랑뿐임을 확신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미움과 원망으로 응어리진 가슴들이 타 버릴 것이다. 맺혔던 한들이 풀리어 질 것이다. 이것이 남은 자들이 수행해야 할 선교적 사명의 시작이며 과정이며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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