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산방

[ 산방일기 ] 장돈식장로의 산방일기(124)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7년 06월 05일(화) 00:00
   
계절의 여왕, 5 월도 하순이다. 월초부터 기다리던 산목련이 꽃 망울을 내밀더니 지금 만개 했다. 이 꽃의 학문적 이름은 '함박꽃나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개목련' 또는 '산목련'이라고 한다. '개목련'의 '개'자가 정원에서 가꾸는 '목련'에서 이를 비하(卑下)해서 부르는 이름 같아, 나는 이 지방 사람들처럼 '산목련'이라고 부른다.

목련은 꽃이 귀한 이른 봄에 나무가 잎도 돋기 전에 화려하고 성급하게 피는 꽃이다. 그러나 빈 가지에 꽃만 촘촘히 달고, 나 보란 듯이 나대다가 지는 모습이 좀 추하다는 생각은 한다. 거기에 비해 산목련은 느긋하게 계절을 기다려서 그 윤택한 잎이 다 퍼진 후에 꽃을 피운다. 흰 무궁화를 닮아 속으로 연연히 붉은 화려한 꽃을 가지 끝마다 한 송이 씩 만을 달고 피어난다. 향이 짙어서 한 나무만 피어도 골 안에 향기가 진동한다.

어제는 오랫동안 벼르던 뜰에 자라는 느릅나무의 한 가지(枝)를 잘랐다. 사진작가 토마스 후버는 "나는 나무사진을 찍기 전에 나무 둘레를 돌면서 나무가 동의해주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때로는 나무를 설득하는데 이틀씩이나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나무가 허락을 할 때에 만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것이다.

내 산방에서 남쪽 하늘을 바라 볼 때, 시야를 가리는 나무 가지가 있다. 집 뒤, 비탈에 뿌리를 내리고 20여 년, 자란 이 느릅나무는 큰 세 가지로 자랐는데 그 우듬지는 서재와 정자 사이의 잔디밭 위를 그늘로 덮고 있다. 그 나무 그늘 밑의 잔디도 이 느릅나무 그늘 때문에 햇빛이 모자란다고 푸념이 대단했다.

지난해부터 나무에게 3가지 중, 밑으로 늘어진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자르기를 바라건만 나무는 아니라고 했다. 나무를 대할 적마다 "한 가지만 자르자"고 하던 중, 이달 초에 "좋다"는 응답이다. 나무와의 대화라는 게 이상한 얘기로 들릴지 몰라도 나무도 생명체이고 나무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고, 같은 터전에 사는 이웃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는 것 같이 나무에도 격은 있다.

5월 한 달은 비가 잦았다. 산방 앞, 개울에 교실 넓이의 웅덩이가 있다. 언제나 청렬(淸冽)한 물이 넘실거려 바라볼 적마다 눈이 시원하다. 그리고 이 웅덩이가 낙원인 이웃도 있다. 열 마리의 '베이징 덕'(北京鴨)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물졸개'들이다. 이 녀석들은 여기의 삶이 즐겁다. 오리들은 병아리 적에 이 물에 들어와서 큰오리가 된 지금까지 한 발짝도 뭍으로 올라와 본적이 없다. 밤이면 웅덩이 한 가운데로 모여, 물에 떠서 잔다. 개울 기슭은 산이고, 거기에는 오리를 노리는 오소리, 너구리, 삵 따위가 있다.

그러나 이놈들은 모두 물을 싫어하는 녀석들이다, 오리는 뭍에 올라오면 뒤뚱거리며 움직임이 둔하나 물에서라면 매우 민첩하다. 그래서 '물오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이 녀석들이 하는 일이란 먹고, 사랑하고, 온 종일 지치지도 않고 꼬리 위쪽의 기름샘에 머리 문질러 기름을 듬뿍 묻혀서는 온몸에다 고루 발라주는 몸치장이 전부다. "그 삶, 우리 사회의 유한(有閑)마담을 닮았군요"하는 사람도 있다.

참사(慘事)도 있었다. 산방 위쪽 숲에 둥지를 틀고, 올해의 살림을 시작하는 찌르레기 한 쌍의 가정사다. 지난 월요일 이들 한 쌍은 아침에 툇마루 탁자 밑에 놓아둔 먹이를 먹고 갔다. 조금 후 내가 거실에서 창밖을 보니 그 암놈이 쏜살같이 서재로 날아온다. 그 뒤에는 수컷이 따라 붙었다.'앗~!' '탕!' 서재 유리창에 암컷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툇마루에 떨어졌다. 당황한 내가 나가서 살펴보니 입으로 피를 토하고 이미 죽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럴 것이다. 아침 끼니를 하고 돌아가서 암컷이 알 낳을 둥지를 만드는데 수컷이 사랑을 하자고 조른다. "여보 참아요, 집이 다 돼 가지 않아요. 기다려요." "알아요! 그러니 사랑부터 해요." "할아버지! 얘 봐요!" 나에게로 도움을 청하려 날아오다가 거실 유리를 보지 못하고 부딪친 것이다. 이튼 날 아침, 수놈 혼자서 날아와 먹지도 않고 암컷이 떨어진 언저리를 돌아보다가 가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수컷은 재혼을 하겠지만 냉동고에 있는 그 암컷을 보노라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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