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자전거 모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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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7년 05월 14일(월) 00:00
최근 세간에 '어머니와 함께 한 9백일 간의 소풍' 이란 책이 화제입니다. 왕일민(王一民ㆍ84)이란 한 중국인 노인이 그의 노모와 함께한 대륙종단 여행기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2년 전 서울에서 열린 환경영화제에 자전거를 주제로 출품됐던 몇 편의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세상에 선을 보였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회자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10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어머니를 부양하던 왕씨는 "죽기 전에 세상 구경 한번 해 보는 게 소원"이라는 어머니를 위해 자전거에 수레를 매달고 어머니와 세상 구경을 떠납니다. 70대 아들은 티베트에 가보고 싶다는 노모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3년 가까이 맨몸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것이지요.

헤이룽강성의 서북단 타허(塔河)를 출발해 중국 최남단까지 갔던 이들 모자의 여행은 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티베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노모가 단지 지도를 보고 "이렇게 쭉 가면 되겠네" 하며 이웃집 마실 가듯 쉽게 생각했고 순박한 아들은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감행했으니까요.

일흔네살 아들은 노모를 덜컹거리는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페달을 밟았습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았던 소나기를 만나 비에 젖기도 하고 가파른 언덕을 넘어갈 땐 페달을 밟지 못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수레를 밀어야 했지만 들길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풀 한포기를 보면서 탄성을 자아내는 노모를 보면 왕씨는 힘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인지라 먹는 것이 부실한 것은 물론 노숙하기 일쑤였고 길을 잘못 들어 며칠씩 산속을 헤매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노모는 마침내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들의 지극한 효심으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떠난 노모는 최종 목적지인 티베트에 못가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백3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노모는 "내 유골을 티베트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책의 1부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2부가 있었습니다. 혼자 남은 아들은 노모의 영정과 유골함을 가슴에 품고 두 번째 여행을 떠나 마침내 어머니와 함께 티베트에 도착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지요.

"이토록 순박하고 지극한 효심을 가질 수 있을까", 책을 읽는 중에 여러 번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 효라는 것이 돈과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준 이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목젖으로 뜨거운 무엇인가가 울컥 울컥 넘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풍수지탄(風樹之嘆),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님을 여읜 이의 한탄을 이르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이미 세상에 안계신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부모님이 계시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분들은 당장 전화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아마도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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