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자의 음악에세이]금단의 물결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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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4월 04일(수)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가출하여 여성국극단을 따라갔다가 "공부를 다 마치고 오라"는 극단 대표의 충고에 돌아온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께 꾸중듣고 아이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때 나는 오히려 그들의 대담함이 부러웠다.

전창근(全昌根) 감독의 영화 '단종애사(端宗哀史)'를 보며 단종 역의 배우 황해남(黃海男)에게 마음이 끌렸었다. 내용도 슬펐지만, 한두 살쯤 위였을 또래 배우의 애잔한 눈빛이 가슴에 남아 집에 오면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영화를 한번 더 보고싶다거나 감히 팬 레터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울적한 마음에 라디오를 켠 나는 애절한 멜로디에 취해 끝까지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Danube Waves)을 들으셨습니다"는 강한 어조의 북한방송이었던 것이다. 당시엔 라디오가 귀했고 웬만해선 주파수가 잘 맞춰지지 않아 상태가 안 좋았는데 센 전파로 쏘아대는 북한방송이 이따금 끼어 들었었다.

어렸을 때부터 "쓸쓸한 이 세상 고생을 면하고"로 시작되는 '사의 찬미'를 많이 들었는데 그 멜로디의 연주를 우리 방송에서 듣지 못했던 이유가 작곡자가 적성국가인 루마니아 태생이었기 때문이었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후로 다시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음악을 듣는 동안 그 배우에게 기울어지는 마음으로 출렁이며 솟구치다 잠잠해지고 아득한 마음이 깊은 강물처럼 자리잡아가는 것을 느꼈었다. 사모하는 마음인지 그리움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이 그 음악을 들으면서 더욱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민 섞인 미소가 떠오르지만 집요하게 '사의 찬미'의 슬픈 가사가 절실하게 다가와 암울한 마음으로 보낸 시절이었다.

그런데 방송사에 입사하여 같은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편곡해서 만든 미국의 'Anniversary Song'을 들었는데 팻 분과 톰 존스, 코니 후란시스가 부르는 어느 것에도 염세적인 슬픔은 담기지 않은, 옛사랑을 추억하는 노래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쿄에서 성악을 전공한 윤심덕이 취입했던 '사의 찬미'는 우리가요사상 첫 히트곡인데 작사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노래를 취입해놓고 윤심덕이 유부남 김우진과 현해탄에 몸을 던져 자살(1926년)했기에 윤심덕의 작사일 거라는 추측이 강하다.

유학도 가고 자유연애를 감행할만큼 적극적인 윤심덕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사회상에 무관하지 않아 염세적인 가사를 썼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강물에 얽힌 노래라면 흑인의 애수를 노래한 미국의 '스와니 강', 볼가강 가에서 배를 끌어당기는 노동자들의 신음과 절규가 담긴 러시아의 '볼가강의 뱃노래', 유럽동란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려고 합창곡으로 작곡됐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등 격동의 역사와 애환이 담긴 노래들이 있다. 이와는 달리 '다뉴브강의 잔물결'은 루마니아의 군악대장이던 이바노비치(Ivanovich, Iosif 1845?-1902)가 팡파르로 작곡했던 것을 피아노용으로 다시 편곡한 것이라고 한다. 이바노비치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유명 극장에서 활동했고 군악대용 음악 외에도 세련된 피아노 작품과 성악곡도 많이 작곡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뉴브강의 잔물결'만이 즐겨 연주된다.

요즈음엔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들어도 우수에 찬 선율보다 뒤에 나오는 경쾌한 부분에 끌려 애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음악이 슬프고 기쁜 것은 듣는 이의 기분에 따르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때로 어린 날 마음 속에 불던 비바람과 쓸쓸함, 울고 싶던 마음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들으며 마음도 강물과 같지 않을까 여기게 된다. 유부남과의 사랑에 괴로워하던 윤심덕의 마음이나 손에 닿지 않는 이를 그리워했던 것도 금단의 물결에 일렁이던 물거품 같은 것, 강물도 어제의 물이 아니고 새로운 물로 출렁이며 흐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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