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탐라소식(2)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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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7일(수) 00:00
글 장 돈 식 그림 김 지 혜

박형! 그동안 안녕하셨수꽈! 제가 들이닥치는 동장군(冬將軍)의 서슬에 서둘러 도망해서 이곳 제주 서귀의 봄 같은 겨울의 품으로 든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지금의 제주사람이 아닌 탐라국인(耽羅國人)의 인상(人相)을 눈에 비춰진 대로 전해보겠습니다.

대륙과는 바닷길이라, 동력선이 나타나기 전 까지는 육지 나들이가 자유롭지 못하여 섬에 밀봉(密封)된 채, 수 천 년을 살아 낸 탐라국인들은 이곳 섬사람만이 가지는 독특한 인상(人相)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선, 키가 작습니다. 나는 육지에서는 보통 키인 174cm인데 여기서는 장대(壯大)한 사람에 속합니다. 얼굴은 체구에 비해 면적이 넓고 장방형에 가까운 각진 얼굴에 피부는 좀 두터워 해맑다고는 할 수 없고 주름이 많은 편입니다. 윗눈썹은 굵고 숱이 많으면서 짧습니다. 옛글에 '사람의 몸값이 천금이면(一身重千金) 눈이 칠 백금(眼精七百金)이다'라고 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곳사람들의 좀 불거진 듯, 형형(炯炯)한 눈빛은 상대를 압도합니다.

   
이 세대를 풍미(風靡)하는 성형수술은 여기라고 비켜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자들의 얼굴용모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본바탕 얼굴이 아닌 경우가 많을 터이니까요, 그러나 체구만은 타고 난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전 여성이 글래머인 건 확실합니다. 엉덩이를 재는 줄자로 가슴둘레를 재려면 눈금이 모자라는 가분수(假分數)이면서 매우 육감적(肉感的)입니다. 같은 민족이면서 육지와는 많이 다르고 사회구성원 전원이 붕어빵으로 균일한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 해 전, 나는 중남미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들은 얘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식민이라는 스페인의 미 대륙 침략사입니다. 약 4백년 전, 스페인은 막강한 군대를 앞세워 새 대륙 미주(美洲)로 쳐들어갔을 때, 본국정부에서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본토인 인디오의 모든 여자는 결혼, 미혼을 가리지 말고 전부 스페인남자의 유전자로 임신을 시켜라" 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고국과 집을 떠나 성욕에 굶주린 군인들은 그 명령에 충실했습니다. 유럽인종인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들은 2세, 3세로 증식되면서 '메스리조(Mesljo)'라는 새로운 인종이 생겼고, 자기들의 애비, 할애비의 나라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의 히스패닉이 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12세기, 병자호란 때, 몽골의 '구빌라이 칸'은 수세에 몰려 강화를 원하는 고려임금 인조(仁祖)에게, 한 해에 금 천 개, 은 3천 개, 말 3천 필(匹)의 조공(朝貢)을 바칠 것과 특히 자국민과 통혼(通婚)을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통혼이라는 게, 지금처럼 우리의 총각들이 몽골처녀와 결혼하고 데려다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네 군대들의 성욕(性慾)을 채우기 위한 계략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침략할 교두보와 군마(軍馬)를 조달하기 위해 탐라국에다 초토사를 설치하고, 1273년부터 1374년까지 101년 동안 군대를 주둔 시켰습니다. 정부의 도움이 없는 그 동안 탐라의 순수성은 완전히 유린되었습니다.

작년에 KBS1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징키스칸'을 시청하다가 깜짝 놀랐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주연, 조연, 엑스트라 까지 체형이나 얼굴이 탐라인들과 너무 흡사해서 저 작품은 제주에서 촬영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제주도 방언이라는 것도 영, 호남 사투리는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는 있어도, 이곳 방언처럼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에 또 편지 호끔 쓰쿠다.(좀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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